말로만 정보공개, 감추는 게 더 많아

부실 데이터에 툭하면 비공개
까다로운 구제절차 중도 포기
전문가 "이의 신청 계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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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A기자는 지난해 국방부에 지난 10년간의 군부대 내 사망자와 사망사유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군 의문사와 관련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받은 문서에는 지난 5년간의 사망자 숫자만 덜렁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 5년간의 자료는 축적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망사유는 아무런 이유 없이 공개되지 않았다. A기자는 “취재 일정이 빠듯해 추가 정보 요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명확한 사유 없이 내부 보안 등을 이유로 자료 공개를 꺼리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가 ‘정부 3.0’ 정책을 내세우며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고 있는 정보를 적극 공개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기자들은 부실한 정보공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처음 요구와 달리 A4용지 1장 분량의 부실한 내용이 오거나 미묘하게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엉터리 정보들을 받기 때문이다. 또 예민한 사항의 경우 아예 비공개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기자들은 토로하고 있다.


권소영 대구CBS 기자는 “대구교육청 징계위원회가 여교사를 상습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장을 솜방망이 처벌했다는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징계위원회 명단을 달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개인정보라면서 비공개 결정을 알려왔다”며 “연락처, 주민등록번호 말고 소속과 이름, 징계위 포함 여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민감하고 결정적인 정보일수록 갖은 이유를 대며 비공개 통보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재호 KBS 기자도 “최근 광산 관련 정보를 청구했는데 사유지라는 이유 때문에 정확한 주소지를 안 주더라”면서 “어떻게 주소지가 사적인 정보인가. 네이버나 다음에서 서비스하는 주소는 그럼 다 뭔지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엉터리 정보나 비공개 결정에 뿔이 나게 마련이지만 기자들은 쉽사리 이의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 불복구제절차를 밟지 못한다. 마감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장기간이 소요되는 싸움에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B기자는 “마감 시간에 쫓기다보면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제도를 알아도 포기하게 된다. 정보공개청구 자체도 나름 품을 들여 신청한 것인데 한 번 거부당하고 이의신청까지 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정보공개 답변까지 기간이 최대 10일인데 일부러 기관들이 기간을 꽉 채워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는 “이때까지 3000건 정도의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한 번에 제대로 된 내용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면서 “이의신청을 해야 그나마 내가 원했던 정보의 70% 정도를 받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관별로 정보공개 편차가 큰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민일보는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 금융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직접 신청해 운영 실태를 점검했는데 국민일보는 당시 보도에서 “동일한 청구에도 불구하고 기관들이 정보를 공개하는 데까지 소요한 시간이 제각각이었다”며 “서로 다른 잣대로 정보공개 범위를 재단하는 것은 물론 정보공개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취재를 진행했던 이경원 국민일보 기자는 “취재의 마지막 수단으로 정보공개제도를 이용하고는 했는데 기관별로 정보공개 범위가 제각각이라 억하심정에 이 같은 기사를 쓰게 됐다”며 “아직도 각 기관들이 정보공개청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똑같은 기관에서 동일한 정보를 시기만 다르게 청구해도 공개됐던 정보가 부분공개, 비공개로 전환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보공개법 위반 시 처벌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대용 기자는 “최근 방송문화진흥회를 상대로 정보공개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고자 민사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2, 3심에서는 정보공개법에 관한 처벌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며 “처벌조항이 없으면 정보공개법을 위반하더라도 개인이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처벌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호한 정보공개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특별심판위원회 등을 만들어 좀 더 빠르게 불복구제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재호 기자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에 8종류의 비공개 규정이 있는데 이 항목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다. 때문에 어느 범주까지 공개할 수 있고 없고를 시행규칙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행정심판으로 넘어가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는 정보의 특성상 2~3주 안에 처리할 수 있는 특별심판위원회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자들이 현명하게 정보공개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기자들의 청구 내용을 보면 대부분 사용하는 용어들이 거칠어 행정용어를 사용하는 공무원들과 맞지 않다”면서 “아이템과 취재날짜를 정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대부분 실패한다. 아이템별로 3~40개 정도를 미리 청구해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그때그때 취재에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의신청을 해야 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정보공개 여부에 대해 다시 한 번 해당 공무원과 질의응답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서 “횟수나 방법에 제한이 없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많이 청구하고 많은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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