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원한 사표, 언론인 김중배 선생

[기자가 말하는 기자] 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기자

▲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기자

언론인 김중배(金重培) 선생은 5공 독재정권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87년 1월17일 박종철군의 주검을 앞에 두고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고 호곡했다.


박 군이 누구던가.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던 그는 제5공화국 말기에 공안당국에 연행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하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분실에서 숨졌다. 치안본부장은 “친구 소재를 묻던 중 박 군이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독재정권은 20대 청년의 주검 앞에 ‘탁’치니 ‘억’했다며 궤변을 늘어놓으며 은폐로 일관했다. 하지만 언론은 부검의의 진술을 확보했고, 대공수사단 조사실을 가장 먼저 목격했던 내과 전문의는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 고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고발했다.


독재정권과 민주언론, 권력과 시민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역사의 변곡점에서 선생의 칼럼은 진실을 위해 국회가 불을 밝히게 했고, 법률가들이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게 만들었으며, 성직자들이 기도를 하게 하면서 한 청년의 죽음과 삶을 우리 모두의 죽음과 삶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마침내 독재정권에 맞서 6월 민주항쟁에 돌입했고, 5공 독재정권은 결국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행간을 통해 시대의 진실을 더듬더듬 탐지해야 했던 야만의 시절, 김중배 선생의 칼럼과 글은 시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창이었다. 또 격동의 시절, 시대의 획을 그은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는 2년 뒤 필자가 기자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 점의 의문도 없는 진실 규명을 통한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권을 추구했던 기자 김중배 선생. 비록 큰 가르침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글을 통해, 실천하는 지성을 통해 필자를 깨우쳐준 선생은 2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 기자들에게 영원한 사표로서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다만, 후생의 아둔한 머리와 무뎌진 기자 정신이 선생을 욕되게 할까 항상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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