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서 자랑스러운 내 남편·내 아내…더 좋은 기자 됐으면

[창립 51주년 특집]남편이 바라본 기자 아내, 아내가 바라본 기자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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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남편, 기자 아내는 상대 배우자에게 그다지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퇴근 시간이 늦었고 술을 많이 마셨고 육아를 비롯한 집안일에도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자라는 직업은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아내와 남편도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식이 기자의 꿈을 가진다면 지지한다고도 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최대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자. 이들이 바라는 기자 남편, 기자 아내의 모습은 더 좋은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아니라 더 좋은 기자의 모습이었다. 그 사랑과 배려가 있기에 오늘도 수많은 기자 남편, 기자 아내들은 걱정 없이 현장을 누빈다. 



“힘들어도 내색 안하는 남편, 프로예요”
이은주씨(강민수 KBS 기자 아내)

이은주(36)씨 입에서는 ‘사쓰마와리’ ‘바이스’ ‘일진’ 등의 용어가 연신 튀어나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런 용어들이 익숙하단다. 이씨는 강민수 KBS 기자의 아내다. 올해로 결혼 10년차. 한국도로공사 신입사원 시절 강원도 원주로 발령이 났는데 당시 지역 순환 근무로 원주에서 도로공사를 출입하던 남편과 인연이 닿아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연애 시절에는 제법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자주 즐겼다. 정시에 퇴근해 경치 좋은 곳도 구경하고 운동도 배우는 등 여가 시간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이 여의도로 복귀하면서 생활이 180도 달라졌다. 오전 6시에 출근해 저녁 9시 뉴스가 끝나야 들어오는 남편은 바빠도 너무 바빴다. 밥 한 끼 같이 먹을 시간도 없었다.


아이가 생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육아가 대세라는데 남편은 집에 돌아오면 물에 젖은 곰인형처럼 축 퍼졌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아쉬움도 원망도 많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바깥에서 힘들게 일하면 저렇게 지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일 데드라인이 있고 자기가 소화해야 할 몫이 있는데 하루도 쉬이 넘어가는 날이 없으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육아도 육아지만 사실 이씨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남편이 위험한 현장에 파견되는 것이다. 결혼 초 중국 쓰촨 대지진 현장에 갔을 때도, 천안함 연평도 사건 현장에 파견됐을 때도 이씨는 마음을 졸이며 남편이 방송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진이나 2차 공격이 있을지도 모를 위험한 곳에 간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인 것 같아요. 계속 걱정이 되니까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 힘든 여건을 이겨내고 방송하는 걸 보면 프로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이들이 뉴스에 나오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커간다는 것도 크나큰 장점이다. 내용도 모르지만 뉴스 멘트를 따라하며 좋아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큰 아이는 벌써 방과 후 아나운서부에 들어가 뉴스를 만들고 있다. “남편이 힘들게 일하는 걸 보면 말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이가 긍정적으로 아빠 모습을 따라하는 걸 보면 더 멋진 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에 종사한다는 건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니까요. 남편도 앞으로 중립을 잘 견지하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보도를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남편의 기사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기사 쓰려고 발품 파는 모습 너무 멋져”
송영수씨(홍희경 서울신문 기자 남편)

서울신문에는 공군과 연을 맺은 커플이 3쌍 있다. 2011년 3월 부부의 연을 맺은 원조 커플이 서로의 후배를 이어주고, 그 후배들이 새끼를 쳐 또 하나의 인연이 생긴 덕이다. 그 원조는 바로 홍희경 기자와 송영수(41) 소령. 송 소령을 지난 10일 서울신문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아내 회사 근처인지라 온 김에 만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만났다”고 답했다. “근데 낮술을 마셔서요. 매일같이 술을 마셔요. 문제라니까요.” 결혼 5년차 남편의 입에서는 불만 사항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기자 아내의 장점은 거의 없어요. 퇴근도 불규칙적이고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도 종종 있죠.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채로 데리러 오라면서 전화를 해요. 아내로서 별로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송 소령의 어린 시절 꿈은 기자였다. 그래서 아내와 소개팅을 할 때 호기심이 컸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도 데이트 중간 중간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계속 전화 통화를 하며 전문용어를 쏟아내는 아내의 모습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얘기가 잘 통했다. 얘기를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만난 지 6개월 만에 홍 기자와 송 소령은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후에 만나서 경찰서에서 밤새고 뻗치기 하는 모습을 못 봤어요. 간접적으로나마 엿보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쉬웠죠.”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송 소령은 아내의 직장 생활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결혼할 때 서울신문 부장들과 술 한 잔씩 기울인 것은 기본이고 매해 서울신문 마라톤대회에 꾸준히 참석하는가 하면 야구단 창단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부 회식에도 참석하고 동료들 경조사에도 동행했다. “직장은 생계를 유지하고 밥을 먹는 곳이잖아요. 아내가 직장 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윤활유를 쳐준다는 느낌으로요. 또 아내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와 제가 직접 겪었을 때와는 이해의 폭이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아내의 기사들도 거의 다 본다고 했다. 중국에 있는 광복군 후손들의 얘기를 다룬 기사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기자는 기사로 얘기한다는데 기사를 쓰기 위해 이곳저곳 협조를 요청하고 발품 파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고 멋지더라고요. 그럴 땐 장가 잘 갔다는 생각이 들죠. ‘슈퍼맨’ 같은 아내가 앞으로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외조할 겁니다.”



“새벽에 외신 챙기는 아내, 대단해요”
최홍성씨(김양희 한겨레 기자 남편)

프로야구 구단 SK 와이번스에서 운영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최홍성(39)씨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2005년 초다. 아내는 그 해 SK 와이번스 담당기자가 됐는데 아침마다 홍보 담당자인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거리가 있는지 집요하게 묻곤 했다. MSN에 하루 종일 연결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두 달 넘게 매일 통화를 하는 열혈 기자와 홍보 담당자가 급속도로 친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둘은 같이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면서 정을 쌓다 그 해 시즌 개막 전날 결국 연인이 되는 데 성공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4월 초에 사귀기 시작했는데 6월에 처갓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고 7월에는 상견례를 했다. 문제는 대외적으로 비밀연애였다는 데 있었다. 최씨는 도저히 회사에 얘기할 자신이 없었다. 홍보 담당자가 기자를 만나면 시선이 곱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추석 즈음 장인어른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근처를 배회하던 동료 기자에게 발각됐고,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청첩장을 돌렸다.


홍보 담당자와 기자의 결혼 생활은 공과 사의 완벽한 구분 사이에서 이뤄졌다. 아내의 특종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켜야 될 것은 지켜야 했다. 아내도 다른 구단의 얘기는 철저히 함구했다. 야구 사회가 워낙 좁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전 솔직히 아내의 후광효과를 많이 본 편이에요. 아내가 대인관계도 좋고 두루두루 친하다보니 저는 몰라도 김 기자 남편이라고 하면 알아보는 관계자들이 많았어요. 그에 비해 저는 생각하는 것만큼 도움이 돼주지 못해 언제나 미안할 뿐이죠. 물을 먹으면 더 혼나는 경우도 있고, 우리 구단과 관련해서 오해도 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철저한 기자정신으로 좋은 기사를 써내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최씨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는 육아휴직 중인데 새벽에 일어나서 외신을 다 챙겨요. 기자정신이 살아 있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내가 종종 야구선수들의 인간적인 면, 승부 뒤의 또 다른 면들을 기사로 다루거든요. 그런 기사에 독자들이 댓글로, 이메일로, 손 편지로 공감해주면 남편으로서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최씨는 앞으로 아내가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기사를 꾸준히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하는 사람에게 잘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장 잘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잘할 수 있게 격려하는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글을 읽고 누군가 한 번쯤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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