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폭주, 일본 젊은세대를 깨우다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국제부 차장

▲김동진 세계일보 국제부 차장

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도 일본 열도가 연일 시위로 들끓고 있다.
지난 15, 16일 일본 중의원(하원) 특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아베 정권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 규정을 담은 안전보장 관련법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면서다. 일본 전역에서 시민들이 ‘아베 정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종이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1970년대 학생운동의 물결이 퇴조한 이후 깊은 잠에 빠졌던 일본 시민사회의 저항 의식이 다시 눈을 뜬 것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시위대의 모습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외신을 타고 들어온 집회 사진을 보면 연령층과 계층이 훨씬 다양해진 것이 눈에 띈다. 대학생들부터 젊은 회사원, 30대 주부, 전문직 인텔리, 자영업자 등 일본 언론이 전하는 시위대의 면면이 새롭기만 하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주요 집회 시위 현장에선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학가에서도 시위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자신들의 생각을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낯설어했다. 자연스레 젊은 세대의 선거 참여도 저조했다.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당장 자기 앞가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회 공동체의 문제는 자신들과 상관 없다는 일종의 ‘사회적 자폐증’이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했다.


물론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 수만 명이 참가하는 반핵 탈원전 집회가 심심찮게 있었다. 하지만 그 집회들을 조직했던 시민단체 간부들이나 거기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들이었다.


1960, 70년대 일본 사회를 풍미했던 학생운동 세대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집회현장의 단골 참가자였다. 노년층은 과거의 이념적 타성에 젖어 젊은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줄 몰랐다. 젊은이들은 사회 전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려 하지 않았다. 윗세대에서 아래세대로 시민사회의 바통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일본 사회의 심각한 고령화가 시민운동에서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양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자신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아베 총리가 의도치 않게 큰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안보법안 강행처리로 세대 간 끊어졌던 연대의식을 깨웠다. 일본 사회에서 수십 년만에 세대를 뛰어넘는 대규모 저항을 불러왔다. 덩달아 아베 총리의 지지율도 바닥을 치고 있다.


혹자는 55년 전 일본 사회의 안보투쟁을 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스 노부스케 전 총리는 1960년 5월19일 밤 경찰을 동원해 중의원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을 끌어낸 후 미·일 안전보장 조약(안보조약)을 강행 처리했다. 이 때문에 국회와 총리관저, 미국 대사관 주변이 온통 시위와 집회로 뒤덮였다. 국민적 반발로 국가 마비 사태가 장기화되자 기시 내각은 결국 두 달 뒤 총사퇴해야 했다.


아베 총리가 앞으로 개시될 참의원(상원) 심의과정에서도 여론에 귀를 닫은 채 폭주를 거듭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외조부처럼 쓸쓸히 정치무대에서 퇴장할 수 있다. 그 향배를 쥔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젊은 세대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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