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 법정에 선 이상호·김재철 뒤바뀐 운명

해고무효 확정 이상호 기자 출근
사측, 발령 미루고 재징계 예고
배임 유죄 김재철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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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6개월간 해직됐던 이상호 MBC 기자가 지난 9일 대법원에서 해고무효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기자는 2012년 대선 직전 MBC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 단독 인터뷰를 비밀리에 진행했다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폭로했다는 이유로 2013년 1월15일 해고됐다. 강지웅·박성제·박성호·이용마·정영하·최승호 등에 이은 7번째 해고자였다.


해고 시킨 당사자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이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이 기자가 해고무효 확정 판결을 받은 날, 김 전 사장은 항소심 법정에 섰다. 법인카드를 부정 사용한 업무상 배임혐의였다. “재임기간 내내 MBC 내부의 갈등을 일으켜 공영방송 MBC의 위상을 흔들리게 했다”며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 전 사장은 항소심에서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21년 전 첫 출근 하는 마음으로 왔다. 회사는 중징계를 예고했지만, 그럼에도 두근두근 설레고 행복하다. MBC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MBC를 되살리겠다.” 이상호 기자가 지난 14일 해고무효 판결 이후 첫 출근을 했다. 그는 덥수룩했던 수염을 자르고 넥타이까지 갖춰 맸다. 이 기자는 수염을 깎은 이유에 대해 “기자는 언제라도 뉴스룸에 투입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상호 MBC 기자(왼쪽)가 지난 9일 대법원에서 해고무효를 선고받고 14일부터 출근을 시작했다.(김희영 기자) 같은 날 업무상 배임 등으로 기소된 김재철 전 사장은 원심보다 가벼운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연합뉴스)

사측은 전날 이 기자에게 14일 오전 9시까지 방송센터 7층에 위치한 보도운영부로 출근해 근무 장소 등을 안내받으라고 통보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오전 8시40분쯤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에서 이 기자와 출근길 인사를 나눴다. 사측의 경계는 삼엄했다. “목적이 있는 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로비에 있던 취재기자를 내보냈고, 오고가는 사원들의 출입증을 검사하기도 했다.


회사는 아직 이 기자에 대한 정식 인사발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 기자는 당분간 보도국의 남은 자리에 배치돼 ‘뉴스모니터’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3사 모니터링 후 보도국장에게 뉴스 포맷 및 아이템 개발 페이퍼를 일일보고 하는 업무다.


동시에 재징계 우려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MBC는 판결 직후 경영지원국장 명의의 입장을 내어 “회사는 법원 결정에 따라 후속 인사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상호의 사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기자의 복직은 MBC 해직언론인 8명 가운데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난 9일 대법원은 “이 사건 해고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처분으로서 무효라는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일부 징계사유는 될 수 있지만 해고까지 한 것은 지나치다는 1·2심의 판결을 확정하고 사측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이날 오후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사장은 벌금 2000만원으로 감형을 받았다. 2012년 사장 취임 후 법인카드로 호텔비를 지급하고 명품가방을 구입하는 등 6억9000만원 가량을 유용한 혐의로 노조에 고발당한 사안이었다. 김 전 사장은 항소심 결과에 만족한 듯 상고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법원이 밝힌 감형 이유 중 하나는 “MBC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서면을 제출한 점”이었다. 해직자들에 대한 잇단 ‘해고무효’ 판결에도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던 MBC는 전 사장의 ‘배임’에는 관대했다.


MBC 구성원들은 이 같은 판결 내용에 분노했다. MBC본부는 “안광한 사장은 법원에서 연거푸 무효판결이 나는 사원들의 해고·정직 등 중징계에 있어서는 끝까지 소송을 강행하면서, 명백히 유죄가 입증된 배임 범죄에 대해서는 선처를 호소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전 사장은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지난 2012년 파업과 관련해) 제가 노조에 압력을 가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2012년 총선, 대선 등을 거치며 정치적 싸움 때문에 노사 간 어려움이 있었다. 저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MBC 구성원들은 이 기자 해고 당시 부사장이자 인사위원장이었던 안광한 사장에게 진정한 사과와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MBC본부는 “안 사장이 인사위원장으로서 강행했던 징계가 법원의 ‘최상급심’에서 ‘위법’하다고 결정됐으니, 이처럼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MBC 기자협회와 노조는 남은 해직언론인 7명에 대한 복직을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정영하 전 위원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박성호 전 기자협회장,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 등 6명은 항소심까지 해고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사측이 상고한 상태다. 또한 지난 1월 해고된 권성민 PD는 오는 16일 해고무효소송 첫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 기자는 “한꺼번에 복직이 되면 좋을 텐데 죄송한 마음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영하 전 위원장은 이 기자의 복직을 축하며 “부럽다 이상호, 하지만 금방 따라간다 우리, 빨리 피해라 안광한”이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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