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좌경화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미국 대선이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주자들이 속속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공화당은 이미 10명이 출마를 선언했고, 아직 공식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등 유력 주자들이 조만간 뛰어들 것을 감안하면 많게는 15명이 경선을 하게 될 것 같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 출연할 사람을 10명 선에서 자를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의 성향도 무엇이 보수인지를 놓고 천차만별이다. 


그에 비해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라는 확실한 대세를 형성한 주자가 있기 때문에 출마자가 적은 편이다. 무소속이지만 민주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과 메릴랜드 주지사를 지낸 마틴 오말리 정도가 있다. 이들의 지지율은 클린턴과의 비교가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미미한 편이다. 5월 퀴니피악대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이 57%였고 2위 샌더스(15%)는 40% 이상 뒤졌다. 오말리는 1%에 그쳤고,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조 바이든 부통령이 9%로 3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주목할만한 것은 출마선언 후 올라가고 있는 샌더스의 인기가 의미하는 바다. 지난달 30일 아이오와주 시골마을 켄셋에서 열린 샌더스의 유세를 보려고 마을인구 250명보다 더 많은 300여명이 몰렸다. 에임스의 맥주 양조장 유세에서는 실내가 꽉 차 100여명이 건물 밖에서 연설을 들어야 했다. 데븐포트에서는 700여명의 청중이 몰렸다. 


행사 주최 측은 “백미러에 비친 물체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클린턴이 샌더스의 추격을 의식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뉴욕타임스는 내년 2월 경선이 시작되는 상징적인 아이오와에서 샌더스가 공화, 민주 양당을 통틀어 다른 어느 후보들보다 더 많은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다지 호감을 주는 외모도 아니고 클린턴보다 6살이 많은 73세 할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보겠다고 그러는 것일까.


그의 인기는 샌더스 개인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그가 표방하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자칭 ‘사회주의자’인 샌더스는 미 상원 내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정치인이다. 그는 상위 1%와 하위 99%의 구도를 가장 자주 언급하는 의원이기도 하다. 진보진영의 ‘슈퍼스타’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며 워런에 대한 지지가 샌더스에게 향한 측면이 있다. 2011년 월가 점령시위를 벌였던 조직과 에너지가 샌더스에게 모여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클린턴이 이러한 현장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 인상하자고 주장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 중인 거대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도 미국 일자리 증대와 임금 인상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지지를 거부했다. 샌더스는 무소속임에도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유가 ‘보수적인’ 클린턴을 좀 더 왼쪽으로 견인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는데 클린턴이 그런 의도에 부응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이념적 지향은 8년 전에 비해 좀 더 왼쪽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TPP가 민주당 의원 80~90% 정도의 반대에 부딪혀 전망이 불투명한 것이 좋은 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의료보험, 기후변화, 동성결혼 등 여러 이슈에서 택한 진보적 정책들이 더 많은 미국 시민들의 공감을 얻었고 민주당은 그 기반 위에서 대선을 치르고 있다.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 심해진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복지 지출의 확대, 부자증세 등 사회경제적 의제들이 논쟁의 장으로 들어왔다. 퍼거슨, 볼티모어 흑인 사망 이후 일어난 도심 시위는 빈곤문제 해결의 절실함을 강화했다.


그간의 패턴으로만 보자면 다음 대선은 민주당 8년 집권 후 공화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리라고 보는 것이 안전한 전망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은 이념적으로 나눠져 당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하는 공화당, 비교적 일관되게 좌경화되어가는 민주당의 차이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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