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새끼원숭이와 일본의 언론자유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일본의 한 동물원에서 갓 태어난 새끼 원숭이에게 영국 공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영국왕실에 실례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지난주 일본 전역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공모결과가 언론에 보도되자 동물원에는 항의전화와 이메일이 빗발쳤다고 한다. 


“런던 동물원의 원숭이에게 일본 왕족의 이름을 붙인다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영국왕실에 실례다”, “일본인들은 영국왕실을 바보취급한다고 (영국인들이) 생각하지 않겠느냐” 등 반발에 부딪히자 동물원 측은 공모결정 취소 여부를 협의 중이라며 태도를 유보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국민의 찬반 의견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국인들 반응도 소개했다. 


소동의 발단이 된 곳은 큐수지역의 오이타현 오이타시에 소재한 다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은 지난 1984년부터 매년 처음으로 태어난 새끼 원숭이의 이름을 공모를 통해서 짓고 있다. 올해는 공모 마감 직전에 영국왕실에서 샬럿공주가 태어난 관계로 응모작 853건 중 샬럿이라는 이름이 59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도 샬럿이라는 이름은 최근 막을 내린 NHK 인기 아침드라마의 여주인공인 미국여성의 본명이기도 하다. 영국왕실이 “원숭이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동물원측의 자유다”라는 공식 견해를 밝히고 난 이후에야 소동은 진정됐다.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상치 않아 보인다. 하나는 로얄패밀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경질적인 과잉 여론이다. 비난 여론의 저류에는 이번 사태를 영국왕실에 대한 문제가 아닌 일본왕실에 대한 비하나 야유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왕실이 그렇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두 번째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공격적인 여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왕실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면 공모로 결정된 이름은 철회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동물원 측은 언론과 인터넷에서 몰매를 맞았을 것이 틀림없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여론의 공격성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문제에서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기사를 보도한 전직 아사히신문 우에무라 기자(혹세 학원 대학 강사)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를 제대로 대변해주는 언론은 없다. 그에 대한 비난은 가족에 대한 살해위협으로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으로 배달된 편지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의 딸을 반드시 살해하겠다는 협박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우에무라씨가 살해 위협을 받게 된 계기가 된 기사는 24년 전에 작성한 기사다. 


비판적인 의견에 대한 공격은 개인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민당은 지난달 17일 당내 정보통신 전략조사회에 NHK와 TV아사히의 관계자를 소환했다. 프로그램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NHK와 생방송 도중 총리관저로부터 압력을 받아 도중하차하게 됐다는 방송사고(?)를 낸 TV아사히의 관계자를 불러 해당 내용에 대해 의견을 듣는다는 것이다. 청문회에 참석해 달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은 출두명령에 다름 아니었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언론이 이 같은 압력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더더욱 문제이다. 두 방송사는 정부여당에 대해 아무런 항의나 비난도 하지 않은 채 청문회에 참석했다. 이런 장면은 다른 언론사들에게 권력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다. 타 언론사 최고경영자들이 정례기자회견에서 여당의 언론간섭을 비판했지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아베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회 이후 정권에 대한 일본 언론의 비판의 칼날은 더욱 무뎌지고 있는 느낌이다. 방송에서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출연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과 비례해서 언론자유도는 동반하락하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단이 발표한 언론자유도는 일본 언론의 건전성이 약해지고 있는 경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0년 11위이던 언론자유도는 2012년 22위, 2013년 53위, 2014년 59위로 매년 하락하더니 2015년에는 61위까지 떨어졌다. 언론자유도 하락과 아베 수상의 장기집권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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