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때마다 떠오르는 故성유보 선생

[기자가 말하는 기자]유성애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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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애 오마이뉴스 기자

주제가 ‘나의 오늘을 있게 한 기자’라는데 아직 경력이 적다. 많은 선·후배와 그보다 더 많은 취재원들이 나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선배(혹은 선생) 한 분을 떠올리며, 꽃 한 송이 놓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선배와의 인연은 별것 없다. 2012년 초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만난 첫 취재원이었다. 종로 근처에서 만나 1974년 10월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 기자 180여 명이 모여 목숨을 걸고 기관원 출입 금지·언론인 연행 거부 등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선포했다는 이야기. 그로 인해 100명 넘는 기자들이 해직됐고, 그 뒤 동아투위를 통해 37년째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 그 시간을 기사로 옮기며 나는 심장이 다 무거웠다. 


선배는 ‘이룰태림(큰 숲을 이룬다)’ 성유보 선생이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싸한 마음으로 빈소를 찾았다. 연은 얕지만 슬픔이 깊었다. ‘오래도록 따를 대선배를 잃었다’는 생각을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선배가 참여했던 동아투위는 얼마 뒤 40년 역사가 담긴 실록을 펴냈다. 


안타깝게도 40년 전과 지금이 많이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언론을 길들이려 하는 권력의 속성은 여전하고, 현실을 외면한 채 정부 발표를 받아쓰는 일부 언론의 보도행태도 여전하다. 언론인들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외치다 쫓겨나는 상황은 또 어떤가. 당시 독자들이 침묵하는 언론을 향해 손가락질했다면, 속보 경쟁과 자극적 보도에 매달리는 요즘엔 ‘기자 쓰레기’란 오명을 달아주었다. 


기자가 ‘기레기’로 전락한 요즘,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어쩐지 처량해진다.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열악한 근무환경,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듯한 사회 현실을 보며 초심을 잃을 때도 많다. 해야 할 보도를 했다가 본보기식 소송을 당해 시달리는 한 동료 기자는 내게 ‘그만두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마다 선배의 형형한 눈빛과 육성을 되새기곤 한다. 


“기자를 하면서 명예와 돈, 자유를 다 가질 수는 없어요.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요. 박해받을 것이 두렵다면 왜 언론인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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