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불가능한가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전 “아베의 방문이 빨리 좀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베가 미국에서 후한 대접을 받을수록, 미·일 관계가 밀착될수록 한국 국민들에게는 한국 외교가 실패한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 하원의원 25명이 연명서한을 통해 아베에게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라고 하고 미국 주류언론들이 아베의 과거사 인식을 문제 삼는 논평을 자주 전한 것을 보면 한국 외교관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던 것 같다. 재미한인들이 미국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어느 때보다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일본이 보통국가로 가는 다음 단계의 빗장을 풀어주면서도 아베의 과거사 인식을 다그치지 않았다. 아베는 일본이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갖는 가치를 알고 있기에 미국이 역사문제로 자신을 호되게 몰아붙일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일본은 미·중경쟁에서 확실히 미국 편에 서고 미국산 무기를 엄청나게 구입하며 각종 국제문제 대응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돈을 내놓는다. 아베는 미 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노력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나중까지 줄곧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미국에 갖는 전략적 가치 때문에 자기 운명을 확신한 사람은 예전에도 있었다.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다. 일본 패전 직후인 1945년 9월 A급 전범으로 체포된 그는 1946년 감옥에서 미·소냉전의 시작을 감지하고 자신도 살아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기시노부스케 증언록’에 “냉전은 스가모(형무소)에 있던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미·소관계가 악화되기만 하면 처형당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발언이 있다. 기시는 감옥에서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1957년 총리가 되어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했다.


한국인들 입장에서 보기에 일본과 관련한 역사 정의는 늘 현실 정치에 자리를 내줬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도쿄 전범재판,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 등에서 한국 사람들 목소리는 배제됐다. 국력이 약해서라는 이유가 따라왔다. 한국의 위상이 커진 뒤에는 일본과 비교해 미국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면 안 된다는 질투에 가까운 경쟁의식이 나타나고, 워싱턴에 와서 일본을 깎아내리는 것이 한국 대미외교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그런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는 일본에 가해진 ‘천벌’이고 동정의 여지가 없다. 두 도시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한국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그런 관념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히로시마 등에서 숨진 수십만 명의 일본인들도 역사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쟁에 희생된 자국민들에게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이 문제로 미국을 추궁하지도 못한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돼 불쌍하니까 국가가 돕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논리는 위안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지만 인신매매 희생자가 있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프다’는 식의 아베의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핵폭탄 투하로 민간인들을 살상한 것 역시 전범 행위다. 그것을 승전국 미국이 인정하지 않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뿐이다. 아베의 미 의회 연설로 미·일 간 역사화해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90대의 2차대전 참전 미군포로들은 아베의 역사관을 여전히 성토하고 있으며, 히로시마 등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미·일은 한국에 현재, 미래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아픈 역사를 덮고 가는 자신들을 본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덮은 역사는 현재나 미래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 알려져있듯이 미국은 온갖 핵 비확산 체제를 주도하면서도 자국의 핵무기 사용 옵션을 결코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시 노부스케는 감옥을 나와서는 안되고 해리 트루먼도 전범 법정에 서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에만 일치시키는 한 역사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가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가장 사과하지 않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위안부, 원폭피해자, 그리고 2차대전 미군포로들이 겪었던 고통과 기억은 그렇게 외로운 섬들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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