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기자' 임용, 조대현 사장 책임 묻겠다"

KBS 양대노조, 11개 직능협회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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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베 기자’ 임용을 둘러싼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당 기자가 과거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올린 글에 대해 “극단을 오갔던 과거 배설들은 본심이 담긴 것이 아니”라며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철저히,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겠다”고 사과했지만 내부의 분노와 반발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KBS 양대 노조와 각 직종을 대표하는 사내 11개 협회는 17일 ‘일베 품은 KBS, 흔들리는 공영방송의 가치’라는 주제로 긴급 사원 토론회를 열고 내부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베 기자’의 정식 임용을 강행한 조대현 사장과 경영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KBS 양대 노조와 각 직종을 대표하는 사내 11개 협회는 17일 오후 6시 여의도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장에서 ‘일베 품은 KBS, 흔들리는 공영방송의 가치’라는 주제로 긴급 사원 토론회를 열었다. (주최측 제공)

안주식 KBS PD협회장은 기조 발언을 통해 “여성 혐오와 특정 지역 폄하, 장애인 비하 글을 작성하고 인터넷에 게시해왔던 일베 헤비 유저를 공영방송 KBS의 정식 직원으로 임용하며 범법행위가 아닌 이상 입사 전의 행위는 문제시 할 수 없다는 사측의 입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만큼 폭력적”이라고 주장했다.


안 회장은 “지난 2월 중순 한 언론사 보도로 이 문제가 최초로 공론화 되고 4월1일 정식 직원으로 임용되기까지 한 달 반 동안 경영진이 보여준 태도는 무능과 컨트롤 타워 부재 그 자체였다”며 “결국 ‘일베 기자’ 문제는 공영방송 KBS의 입사 기준을 둘러싼 가치 판단의 문제에서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의 부재, 현 조대현 사장 체제의 비민주성과 무능한 위기대응능력 문제까지 확대됐다”고 비판했다.


조현아 여성협회장은 해당 기자의 사과글에도 진정성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조 회장은 “과거의 행적을 본심이 담기지 않은 배설이라고 해명하며, 사과도 변명도 아닌 글을 올려가며 KBS인들을 우롱하는 잣대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라며 “과연 이러한 글을 쓴 자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경영진의 판단은 뭐냐. 읽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여성 혐오 글에 동조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한 개인으로 인해 노노가 갈등하고 노사가 반목하는 상황을 묵과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김철민 기자협회장은 지난해 경남 진해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일베 활동 사실이 드러나 결국 임용까지 취소된 사례를 들었다. 김 회장은 “문제의 수습기자는 입사 이전의 행적이었지만 입사 이후 논란이 됐고 그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했어야 하는데 회사는 경남 교육청과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이념적인 대결이 아니다. 일베가 사회적 해악이라는 것은 합의된 사항”이라며 “이런 사람을 KBS 기자로 임용하면 안 그래도 의심받는 KBS의 공정성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대현 사장은 올 상반기가 수신료 인상을 위한 절체절명의 마지막 시기라고 했는데, 시청자 신뢰 회복도 안 된 이런 상황에선 국회나 시민단체 상대로 수신료의 ‘시옷’자도 못 꺼낼 것”이라며 “경영진 스스로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곡해하는 배임행위를 한데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조대현 사장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성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사무처장은 “이번 일베 기자 채용 건을 조대현 사장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최악의 인사권 행사로 정의한다”고 밝혔다. 김 사무처장은 “이 친구(일베 기자)는 동기회에서도 제명되고, 노조에도 가입이 안 된다. 이 친구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사장은 왜 정식 임용을 했을까. 조대현 사장의 아집이 아니면 해석할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조대현 사장의 인사권을 인정하지만 대다수 직원의 문제제기를 방치하는 것을 보고 이러한 왜곡된 인사권은 온전히 되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장은 이 사태를 방치하고 악화시켰다. 사장에 대한 불신임을 묻겠다. 인사위를 열고 재론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외부 전문가로 참석한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나타내 눈길을 끌었다. 윤 교수는 “KBS 내부의 주장들과 분노에 공감하지만 그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채용 이전에 했던 발언을 갖고 채용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일베에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베에 익명으로 글을 쓰는 자유는 패륜이 아니다. 물론 일베의 일탈 행위는 나쁘지만 익명 표현자의 신상을 밝히고 집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제가 된 인사의 일베 전력을 고발하는 보도 행위가 애초에 타당했는지 의문이 든다”면서 “사상 전향적인 반성문을 정황적으로 강제하고, 이를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을 보니 누구보다 균형적이어야 할 KBS 사원들이 온당한 문제제기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건 아닌가. 이건 사적 처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주식 PD협회장은 “해당 기자 개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보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라면서도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반박했다. 안 회장은 “사규와 여러 절차를 정확하게 따르기만 했어도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한 외부 기자회견과 같은 방식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이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다”고 말했다.


해당 기자가 정식 임용된 상황에서 이들 되돌릴 수 있냐는 현실적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새노조와 기자협회는 국민감사청구 등을 거론했다. 김성일 새노조 사무처장은 “사규에 따르면 타당한 사유가 있을 때 이사회를 거쳐 임용 취소가 가능하다. 타당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결정은 인사권자가 하지만, 끊임없이 인사권자를 설득하고 감시하는 것은 직원의 역할이자 공영방송의 의무이기도 하다”며 “임용 취소의 근거를 명백하게 만들어서 전 노조가 협의해 공동으로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철민 기자협회장도 “사측이 의지가 없으면 외력으로 강제해야 한다. 임용을 강제한 행정 절차에 정말 문제가 없었는지, 구성원들도 좋고 외부 시민단체도 좋고, 국민감사청구라도 해서 채용 절차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여의도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장에서 KBS 사원들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6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사측에선 토론회 참석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를 비롯한 KBS 출입기자들은 토론회장에 직접 들어가 취재할 계획이었으나, KBS에서 출입을 허가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기사는 주최 측이 제공한 토론회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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