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달라졌는지 의문…독해지고 더욱 진영논리 빠져

[세월호 1주기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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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한국일보 시경캡 “세월호는 국민 생명의 문제…정파성 벗어나 제대로 써야”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재난보도준칙 기자들만 강요…신뢰회복 위해 시스템 바꿔야”
정필모 KBS 보도위원 “언론사 간부들만 각성 없어…현장 보도 왜곡이 더 문제”
최경준 오마이뉴스 사회팀장 “‘기레기’ 다시 돌아온 느낌…시행령 문제 왜 외면하나”
최병국 연합뉴스 경기북부취재본부장 “한국사회 구조적 문제 여전…기자들 각성만으론 안돼”


언론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취재 과정에서 집단 오보와 선정적 보도, 무리한 취재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겼다. 언론은 달라지겠다고 약속했고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여전하다. 기자협회보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가 한국 언론에 던진 문제점을 짚어보고 최근 세월호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김이삭 한국일보 시경캡,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필모 KBS 보도위원, 최경준 오마이뉴스 사회팀장, 최병국 연합뉴스 경기북부취재본부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사회는 김성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직대가 맡았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가 한국 언론에 던진 문제점 등을 짚어보는 좌담회가 열렸다.


사회=세월호 보도, 1년이 된 지금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나.


최병국 연합뉴스 경기북부취재본부장=몇몇 언론학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달라진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언론계 내부에서 노력했는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 바뀐 건 없다’고 말하더라. 현장에 있는 기자들도 예전보다 신중하게 확인하고 되짚어보는 것은 맞지만 지난 1년 동안 보도가 충분히 됐느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개인적으로도 세월호 보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1년 전 토론회 자리에서 나는 우리 사회가 기대만큼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언론계 보도 관행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기자들의 각성만 가지고는 쉽게 바뀌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언론이 바뀌기 위해 무엇을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재난보도준칙 제정을 위해 여러 단체가 모였고 그 이전에도 윤리강령이며 여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결국 기자 스스로 훈련을 강요하는 시스템만 만들었을 뿐 각 언론사별로 체계적인 훈련은 없었다. 게다가 언론은 세월호 참사 이후 바뀐 것이 아니라 더 독해졌고 더욱 진영논리에 빠졌다. 


정필모 KBS 보도위원=현장 기자들은 어느 정도 윤리적 측면에서 자각을 한 것 같다. 당시 세월호 참사를 취재한 1~2년차에서 5년차 안팎의 기자들은 현장에서 나름대로 자율적인 규제를 만들었다. 단원고 학생들이 등교할 때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거나 얼굴을 내보내지 않는 등 실천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공방들, 유가족 내지는 희생자들을 둘러싼 보도를 보면 달라진 게 없다. 언론사 내부의 간부들, 특히 높은 직책에서 각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매우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언론의 앞날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최경준 오마이뉴스 사회팀장=최근에 이슈가 됐던 정부의 배·보상안, 시행령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면서 언론이 유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관찰했다. 추측컨대 1년 전 ‘기레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기레기’라는 욕을 먹은 이유는 정부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썼기 때문이다. 현재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 정부의 배·보상안 발표를 비판의식 없이 받아쓰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언론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심해졌다는 말에 동의한다. 언론은 과연 얼마나 변하려고 노력했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탐사보도 등으로 참사원인을 규명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자본, 인력이 풍족한 메이저 언론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어야 하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이삭 한국일보 시경캡

김이삭 한국일보 시경캡=현장기자들에게 1년 후 언론이 달라졌는지 질문했다. 결론은 달라지기에 짧았다는 것이었다. 안산, 팽목항 등지에서 취재한 기자들에게서 메모를 통해 기레기, 사회적 흉기라는 말이 올라온다. 유가족에게 세월호라는 단어는 지난 참사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머리 속에 있었는데 언론은 한때 불이 붙었다가 잠잠해진 후 1주기가 돼서야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그분들의 열패감은 뿌리가 깊었다. 일부 매체는 심지어 취재 거부 대상이 됐다. 언론이 달라졌다고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사회=최근 세월호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적극적인 보도와 마지못한 보도로 양분돼 있다. 뉴스를 보는 시각의 차이인가, 의도적인 외면인가. 


최경준=외신을 보니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지난 3월 말부터 보도를 해왔더라. 영국 BBC 등은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인터뷰하고 삭발식 모습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또 그들의 입을 통해 시행령의 문제와 불만 등을 전했다. 반면 일부 국내 언론은 배·보상안을 부각시키면서 유가족들의 기자회견, 삭발식은 외면했다. 뉴스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과연 이것을 뉴스가치 판단으로 볼 수 있을까. 


김이삭=이 질문을 받았을 때 세월호 문제가 시각의 차이인지 생각해봤다. 시각의 차이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태가 과연 그런 문제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300명이 넘는 목숨이 어찌됐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구조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는 뜨거운 감자다. 언론이 적어도 1주년이라는 상징성 있는 시한이 됐다면 제대로 써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정파성을 갖고 보도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사회=언론을 향해 “있는 그대로 보도해 달라, 왜곡하지 말라”는 목소리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정필모 KBS 보도위원

정필모=유가족들은 탐사 기획보도가 부족한 것보다 현장보도조차 왜곡되는 것을 문제 삼는다. 대안언론을 보면 날것을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자체를 시청자들이나 유가족은 고마워한다. 현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경준=동감한다. 있는 그대로 보도하면 좋은데 이상한 걸 끼워 넣으면서 왜곡하고 호도하는 것 때문에 유가족들은 있는 그대로 보도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홍식=신뢰 회복을 위해 현재 언론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배구조 문제로 망가진 공영방송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친정부 성향으로 바뀌니 취재조직이 망가지고 있다. 지배구조가 망가진 공영방송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팩트를 전달하려고 해도 조각난다. 언론사 스스로 반성문을 쓰며 차근차근 신뢰 회복의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정필모=과거 서해 페리호를 취재했던 한 방송사의 부장급 기자가 세월호 참사 때 자사 보도가 왜 망가졌는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원인은 인사 문제였다. 사건현장 경험이 풍부한 기자와 데스크들이 현업에서 배제되면서 어설픈 사람들이 부장, 국장 역할을 하고 거기다 정치적 의도까지 개입하니 엉뚱한 방향으로 보도가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보도행태를 바꾸려면 인적 복원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본적인 기자정신을 갖고 윤리의식에 철저한 간부들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최병국=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자잘한 실무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연합뉴스가 최근 세월호 백서를 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과정, 우리 보도의 문제점, 현장기자들이 당시 느꼈던 문제점, 연합 외부 전문가들이 보는 보도의 문제점 등을 다뤘다. 이제 각 데스크 부장들에게 백서를 주고 기자들을 교육시키라고 할 예정이다.


사회=대한민국,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최병국 연합뉴스 경기북부취재본부장

최병국=국민들의 의식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많이 달라졌다.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많지만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언론이나 정치권, 지식인 등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집단들이 충분히 의제화를 하지 못했다. 세월호와 관련 있는 부패 고리 청산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불충분한 것 같다.


김이삭=달라졌다기보다 후퇴했다고 보는 쪽이다. 참사 수습, 규명 다 좋은데 시민의식이 성숙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베의 유족 비아냥 등을 보면 표현의 자유로도 이해하기 어렵고 문제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숙도가 낮아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필모=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의 효율성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압축성장 시대에는 모든 초점을 성장률과 시장주의에 맞췄다. 그러다보니 국가든 개인이든 기업이든 전부 자신의 실속만 차렸다. 설사 늦게 가더라도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윤리를 중히 여기도록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걸 바꿀 수 있는 건 언론뿐이다. 언론이 양적 성장보다 질적인 내실을 다질 수 있는 패러다임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최경준=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반성과 대책을 얘기하다 보면 공허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참사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했고 감사원에서 감사를 했고 검찰이 수사를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원인을 알고 있나. 원인을 모르니 책임자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된 것이다. 안전혁신이나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원인과 책임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사회=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고 1년이 흘렀다. 무엇이 문제인가.


▲최경준 오마이뉴스 사회팀장

최경준=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무조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유홍식=안 믿는 사람이 문제인가, 못 믿게 하는 사람이 문제인가. 우선 정부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세월호 인양에 2천억원이 든다는 부분이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2천억이라는 돈이 중요해서 유가족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사회인가. 얼마가 들든 피해자 가족이 원하면 다 해줄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민들 여론을 수렴해서 하겠다고 하니 인양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뻔히 읽히는 것이다. 


정필모=상식의 실종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장기적으로 돈이 얼마나 들든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나온다면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상식의 복원부터 이뤄져야 진실규명이 이뤄지고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세월호 참사를 우리사회의 희망의 동력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유홍식=희망의 동력은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바로 분노의 지점과 실망의 지점을 정확하게 해결해주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보듬어주고 들어주려 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본다. 


최경준=‘가만히 있어라.’ 참사 당시에 나온 세월호 선내방송이다. 상징적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국가운영의 근간이 되는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수혜를 베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시민들은 각성했다. 더 이상 국가만 믿을 수 없다, 국가에 순종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부와 국민이 동등한 주체가 돼 상호 협력하면서 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세월호 참사가 줬다. 300여명의 희생자가 준 중요한 가치이다. 


정필모=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라면 정부가 시민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도 자기가 속한 국가와 정부에 대해 믿음과 자부심을 갖는다. 정부가 시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가의 존재이유가 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사회=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정리=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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