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아직 먼 언론의 자유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마오쩌둥(毛澤東)이 없었다면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없었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실 마오쩌둥은 중국에선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심장인 톈안먼(天安門) 광장엔 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시신이 안치된 광장 맞은편의 마오주석기념당엔 아침마다 중국 전역에서 올라온 참배객이 줄을 선다. 1위안(약 180원)부터 5위안, 10위안, 20위안, 50위안, 100위안(약 1만8000원)까지 모든 위안화 지폐의 주인공은 단 한 사람, 마오쩌둥이다. 


그런 마오쩌둥을 중국인이 공식 석상에서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사석에선 가능할까. 아무리 사석이라 하더라도 아직 그러면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준 사건이 최근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 6일 인터넷에 관영 CCTV 사회자 비푸젠(畢福劍·56)이 7~8명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현대판 경극의 한 소절인 ‘우리는 노동자 농민의 군대’를 부르는 동영상이 유포되며 시작됐다. 


비푸젠은 춘절(春節·중국의 설) 종합 연예 프로그램인 춘완(春晩)의 사회를 맡는 등 ‘외할아버지’란 별명을 가진 중국의 ‘국민MC’다. 


동영상을 보면 비푸젠은 이 노래를 부르며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추임새를 넣어 마오쩌둥 시대를 비꼬았다. 그는 “공산당 마오 주석”이란 가사 뒤엔 “뭐? 그 XX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우릴 너무 고생시켰지”라고 말했고, “인민의 군대는 이곳을 평정하러 왔지”라는 구절 뒤엔 “허풍떠네”라고 꼬집었다. 


마오쩌둥은 업적만큼 과오도 큰 인물이다. 그는 중국을 외세의 침략과 오랜 분열에서 구해내고 통일시켜 신중국을 세운 공이 크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추진했던 1960년 전후 대약진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는 무려 400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는 모두 1억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나온다. 


사실 중국인들에게 마오쩌둥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물어보면 “과보다는 공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들도 마오쩌둥의 과오를 잘 안다는 얘기다. 따라서 비푸젠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오히려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식사 자리의 참석자 중 한 명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뒤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마오쩌둥 지지자와 관영 매체들을 중심으로 비푸젠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 쏟아졌다. 


중국 언론들은 앞다퉈 “인민해방군과 개국 지도자에 대해 불경죄를 지은 만큼 비푸젠은 당장 사과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매체는 없었다. 논란이 커지며 CCTV도 비푸젠의 출연을 중단시킨 뒤 조사에 착수했다. 그가 진행해온 방송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됐다. 


관영 매체들과 달리 인터넷의 댓글에선 비푸젠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았다. 친구들과 편안하게 밥 먹을 때 한 농담을 갖고 문제 삼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네티즌은 “전 세계에서 자국 지도자에 대해 마음대로 비평할 수 없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 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화대혁명 시대로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결국 비푸젠은 최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나의 언론(말)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앞으로 그가 다시 방송에 나올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공교롭게 CCTV 사장은 새로 임명됐다. 


이번 사건은 아직 중국에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먼 나라 이야기란 점을 보여준다. 특히 그 대상이 마오쩌둥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됐다. 최근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까지 새로 세우겠다면서 초강대국 미국 주도의 금융 질서에도 도전장을 냈다. 국제 사회에서 주도국이 되고 싶은 게 중국의 꿈이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사석에서 나눈 얘기까지 누군가에 의해 신고되고 이로 인해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는 나라이다. 친구들과 밥 먹을 때조차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국가의 미래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내년은 마오 전 주석이 사망한 지 40주기가 되는 해다. 중국이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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