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위해 취재원보호 필요"

'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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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언론에 취재원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고 제보자는 언론보도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취재원보호법이 발의된다. 지난해 세계일보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후 검찰 압수수색설이 나오는 등 정부나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판 보도에 수사기관이 취재원 신원을 밝혀내려는 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과 배재정 의원, 전국언론노조 주최로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대통령도 알아선 안 된다-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는 배재정 의원이 대표발의 예정인 취재원보호법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졌다.

 

‘취재원보호법 제정의 필요성과 방안’을 발제한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기관이 언론사나 기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제보자들의 제보도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며 “취재원보호법은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언론의 취재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현재 취재원보호를 위한 법이 전무하다. 1980년 12월 제정된 언론기본법에는 제보자 신원 등에 관한 진술거부권과 압수ㆍ수색 금지 등이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언론 검열과 등록취소 등 독소조항으로 1987년 언론기본법은 폐지됐다.

 

최 교수는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취재원 보호조항이 현행법에서 사라졌고, 도입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취재원 보호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1989년 검찰은 서경원 전 의원 방북 사건과 관련해 수사관 800명을 동원해 한겨레신문을 압수 수색했고, 2009년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MBC에 압수수색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반면 외국에서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법ㆍ제도를 명문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896년 최초로 ‘방패법’이 제정된 이래 현재 36개 주에서 언론인들이 취재원에 대한 정보와 취재내용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취재원보호법이 시행되고 있고, 유럽 인권법원은 기자나 언론사가 비밀취재원의 신원을 밝히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판시하며 이를 배제하려면 정부가 공익의 압도적인 요건을 증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도 기본법에 ‘증언 거부권’을 인정하고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까지 포괄적으로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언론사나 기자들이 취재원에 대한 비밀과 제보자의 익명성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언론보도로 취재원이나 제보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과 시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며 이와 관련해 △조사나 수사를 목적으로 한 수사기관의 압수ㆍ수색 금지 △법원 및 국회에서 취재원 관련 증언 거부 보장 △범죄수사와 관련돼 취재원 공개를 요구할 경우 수사기관의 정보수집 노력 사실과 사건의 공익성 입증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과 배재정 의원, 전국언론노조 주최로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대통령도 알아선 안 된다-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 토론회가 열렸다.

 

전국언론노조 김동훈 수석부위원장(한겨레 기자)은 “취재원보호는 기자의 직업윤리를 넘어서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해당 한다. 활발한 공익 제보로 권력을 감시ㆍ비판해 투명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에 출발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실제 과거에 언론의 취재원 보호 남용보다 권력이 정치적 수사에 악용한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취재과정의 실사례를 들며 공익제보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전했다. 한 기업체 비판 기사에서 익명으로 ‘이 직원은’ ‘한 직원은’ 이라고 썼지만 회사는 이씨와 한씨 성을 가진 직원들을 색출했고, 또다른 지자체 비판 기사에서는 ‘ㄱ씨’ ‘ㄴ씨’로 표기했다가 나씨 성을 가진 이가 고초를 겪었다는 사례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제보를 후회할 정도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언론인과 언론사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취재원 보호가 우선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실제 언론 관련 소송에서 청와대 관계자나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등이 사건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제보자 공개를 숱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허 변호사는 “취재원 보호와 관련된 소송의 특징은 원고가 권력이나 힘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언론사는 취재원을 공개해 진실성을 입증하면 면책되지만 공개할 수 없는 딜레마에 있다”고 말했다.

 

허 변호사는 “취재원보호법은 언론이 처한 딜레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담아야 한다”며 “법이 제정되면 언론의 특권 등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취재원보호법은 언론이 행사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 공정성과 진실성, 상당성을 충족해 보도에 책임을 진 후 강한 압력을 받았을 때 행사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했다.

 

조준상 KBS 이사도 언론의 윤리적 책임의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보도 당시 ‘학생 전원 구조’ 오보에 발뺌하고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국회 요구에 언론자유 탄압이라고 목청 높이는 것이 국내 유수 언론들의 현 주소”라며 “언론 자체의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취재원보호법을 만든다고 뜻 있는 제보자나 내부 고발자가 언론을 향할 것인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취재원보호법 대상 확대도 제안했다. 조 이사는 “위키리크스나 스노든 사례에서 볼 때 언론뿐만 아니라 언론을 거치지 않고 공중과 익명으로 공표할 권리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며 “취재원과 제보자 보호 책임에 언론인만 있는 건지 언론사도 있는 건지 분명해야 하며, 제보자가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 벌칙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점환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과 과장은 “언론자유의 핵심인 진실ㆍ공정보도와 재판의 공정성 확보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 어느 가치에 더 무게를 둬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범죄와 관련된 정보 또는 정보제공자 공개로 얻는 형사사법정의와 취재원을 묵비함으로써 얻게 되는 언론 자유와 범죄에 대한 비교형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미디어 환경 변화에 의해 지난해 말 기준 5700여개로 인터넷신문이 급격히 늘어나는 등 저널리즘을 상실한 유사언론 행위가 증가하면서 취재원 보호를 내세울 경우 악용될 우려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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