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둘러싼 현실과 판타지

[글로벌 리포트 | 중동]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이스라엘 이미지는 멋지고 쿨하다. 작지만 강한 나라, 아랍 세계에 맞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나라. 최근 전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시즌3)’에서도 이스라엘은 익숙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어느 쪽에도 기대지 않고 자력갱생하는 나라. 그 어떤 초강대국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용맹과 결단력을 갖춘 나라.


그러나 대중문화 속 판타지와 달리 실제 이스라엘 사회에 들어가보면 다소 초라한 일상에 난감할 때가 많다. 텔아비브에 사는 하난(37)은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직이나 결혼은 아직 못했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처지다. 하난의 고민 중 하나는 캠핑카를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자동차를 잘 만드는 한국에서 값싸고 질 좋은 중고 캠핑카를 구할 수 없는지 꽤 진지하게 물어온 적도 있다.


의아했다. 무엇보다 하난은 고가의 캠핑카를 즐길 만한 경제력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하난은 집 대신 캠핑카를 사고 싶다고 했다. 연일 치솟는 이스라엘 집값과 물가 부담 때문에 월세 보증금과 전 재산을 털어 캠핑카를 산 뒤 그 안에서 숙식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싼 집 대신 침실과 주방, 욕실까지 갖춰진 캠핑카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스라엘식 ‘창조 경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난은 지난 17일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네타냐후를 찍지 않겠다”고 했다. “네타냐후는 국민의 삶보다 자신의 정치 경력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국가 안보를 강조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집권 이래 서민 경제가 피폐해졌다는 비판은 많이 나왔다. 네타냐후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일부 반대 세력의 푸념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이스라엘 국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는 국가 안보와 서민 경제라는 큰 축이 맞부딪쳤다. 3선 연임을 노리는 네타냐후 현직 총리와 이에 맞서는 시오니스트 연합의 헤르조그 당수가 안보와 경제 화두를 놓고 접전을 벌였다. 결과는 안보를 앞세운 네타냐후의 승리였다. 연립 정부 구성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네타냐후가 다시 한 번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는 이스라엘의 여성 UN대사가 미국의 UN대사이면서 영부인이기까지 한 상대방에게 당당히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선거를 앞두고 필사적이었던 네타냐후 총리 역시 백악관과 사전 조율도 않은 채 오바마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미 의회 연설을 강행했다. 연설에서 이란 핵 위협을 전세계에 공표한 그는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서라면 미 대통령과도 맞설 수 있는 리더’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이는 보수층 결집으로 이어졌고 네타냐후에게 총선 승리를 가져다 줬다. 


그 대가는 컸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네타냐후의 무리한 전략이 불러온 미 의회의 분열이 이스라엘 입장에서 가장 큰 타격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민주 할 것 없이 그간 이스라엘 문제에서만큼은 양당 공히 맹목적 지지를 보내왔던 의회 분위기가 연설 논란 이후 바뀌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50명은 네타냐후 총리 의회 연설에 불참했는데 이는 그 전까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타냐후 총리가 확언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앞으로 국제법상 논란이 되는 정착촌을 더욱 확대할 것이고 적어도 그의 임기 동안만큼은 팔레스타인의 국가 독립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인구의 20%인 아랍계 국민을 차별한다고 비난 받은 ‘유대국가법’도 통과될 것이고 다음 총선을 앞두고는 또 한 차례 가자지구 전쟁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또 다시 전세계적으로 반(反)이스라엘 물결이 일어나고, 유럽에서 테러를 당하는 유대인이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 


한 국가의 정치 수준은 결국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에 좌우된다. 대중문화 속 이스라엘 모습처럼 강인해 보이는 네타냐후 이미지에 이스라엘 국민들은 쾌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물론 현실은 판타지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다수 이스라엘 국민들은 아직까지는 경제보다 안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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