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향토사 천착해온 김정호 선배

[기자가 말하는 기자]광주매일신문 박준수 경영사업이사(전 편집국장)

▲광주매일신문 박준수 경영사업이사

지역언론에 종사한 지 어느덧 27년이 흘렀다. 1988년 언론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신생 지방지들이 창간 붐을 이루던 때,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한 곳이 광주 소재 무등일보사이다. 대학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해온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글을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 당시 초대 편집국장은 김정호씨(78·향토문화진흥원 이사장)였는데 수습기자인 나에겐 ‘태산’처럼 높고 웅장하게 느껴졌다. 훤칠한 키에 반백의 머리칼이 덮인 둥그런 얼굴, 조리있는 언변이 더해져 노련한 베테랑 기자의 풍모를 자아냈다. 그분은 1963년 조선일보 주재기자로 입사해 주로 사건기자로 활동하다가 1969년 당시 전남일보로 옮겼고 80년 통합된 광주일보에서 조사부장과 향토문화연구소장을 역임하는 등 현장과 연구를 통섭한 ‘학자형 기자’라 할 수 있다.


나는 편집부에 배치돼 내근을 하던 터라 업무상 그분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1년쯤 후 기획실장으로 전보되어 ‘중국산동반도역사기행’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내가 편집을 맡게 돼 ‘사숙(私塾)’할 기회를 가졌다. 원고마감 시간이 되면 나를 불러 지난번 편집에 대한 촌평과 함께 가제목을 달아 넘겨주시곤 했다. 나는 원고를 읽으며 그분의 해박한 지식과 문장력에 감탄하면서 나도 이런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3년 후 나는 현재 몸담고 있는 광주매일로 옮기게 되어 그분과는 짧은 인연으로 끝났지만, 늘 ‘큰바위얼굴’처럼 마음속에 떠오르곤 했다. 내가 바쁜 가운데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껏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그분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한평생 향토사에 천착하면서 그간 45권의 저서를 펴낸 그분은 팔순에 가까운 지금도 무등일보에 ‘광주역사산책’을 연재하는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계신다. 


그분은 최근 광주전남기자협회보에 이런 소회를 피력하셨다. “모름지기 기자는 글을 써야하고 그 글은 사회에 유익해야 한다. 나의 부끄러운 기자생활의 발자취가 후배기자들의 전문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다행이겠다”. 평생을 글쓰는 기자로서 외길을 걷는 그분의 모습에서 옛 싯귀가 읽힌다. ‘눈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박준수 광주매일신문 경영사업이사(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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