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두렵지 않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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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뜨뜻미지근한데, 언론을 지켜보는 쪽에 더 뜨거운 사안이 하나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언론인이 포함된 것을 놓고 공방이 뜨겁다. 급기야 23일엔 국회 법사위에서 공청회까지 열렸다. 과잉입법이란 지적부터 표현의 자유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논란이 뜨거운 만큼 원안대로 2월 국회 처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언론계가 이 법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다. 왜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법안에 언론인을 끼워 넣느냐는 것이다. 1회에 100만원, 연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을 수 있는 그룹에 언론인이 포함됐다는 자체가 언론계의 자정능력이 상실됐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법에 의해 강제되어야 할 정도로 언론의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법은 명확해야 한다. 그 미치는 범위가 분명해야 분쟁이 없다. 적용대상이 과도하게 광범위하면 법의 규범력과 실효성이 되레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온다. 법은 엄밀해야 한다. 그 점에서 왜 언론인이 포함돼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막연하게 일부의 구악적인 행태를 침소봉대해 모든 언론인이 도매금으로 매도돼선 안 된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언론사 종사자를 포함한 데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1인 미디어나 인터넷 팟캐스트 등 다양한 형태의 언론이 있는 환경에서 ‘공익목적’이라는 기준이 너무 추상적이라며 법 적용 대상 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느냐 여부 등으로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흔히 언론을 제4부라고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그 힘이 입법 행정 사법부에 못지않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면 스스로 경계하지 않고 힘을 남용하면 그 자체가 권력이 돼 ‘사회의 공기’가 아닌 ‘흉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 날의 칼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김영란법의 논란은 언론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인지, 그래서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게 맞느냐는 공방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방송 앵커에서 권력의 입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언론인, 국민의 알권리를 핑계로 사주의 지시를 기사로 옮겨 적는 언론인들이 버젓이 있는 한, 언론은 기득권으로 감시받아야 한다. 이미 그 자체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완구 총리가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검경에 불려다니며 막 소리지를 거야”라고 언급한 그들이 누구겠는가. ‘털어서 먼지 안 나올 것 같아’라는 은근한 협박의 대상자가 누구겠는가. 그들은 이미 언론인을 사칭한 사이비 아니겠는가.


사실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된다고 해서 두려워할 언론인은 많지 않다. 정치권력·재벌과 한통속이 돼 골프나 룸싸롱 접대를 받는 사람들이 걱정하지, 정론직필을 위해 애쓰는 대다수 언론인은 오히려 환영할 것이다. 단지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비판언론을 눈엣가시처럼 불편하게 여기는 정권이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노에 앞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동안 언론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지 않았는지, 재벌에 손 내밀고 서민들의 가려움에 눈감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 비판엔 매서웠지만 스스로에게 한없이 너그럽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김영란법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 언론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곱지 않은 시선을 일신할 수 있는 기회여야 한다. 좀 더 스스로에게 엄격한 ‘신독’의 마음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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