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가 잔인해지는 이유

[글로벌 리포트 | 중동]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지난달 파리 테러 사건 당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이스라엘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던 일부 유대인의 시각이었다. 우파와 좌파 진영에서 각기 다른 비판이 제기됐는데 결국 요지는 비슷했다. 파리 시민, 나아가 유럽인이 위선적이라는 것이었다.


강성 우파 유대인은 “펜을 들고 언론인의 죽음을 애도했던 파리 시민이 왜 인질극에 희생된 유대인의 죽음에는 침묵하느냐”고 비난했다. 파리 테러범은 언론사 테러 이후 유대인이 몰리는 유대 율법(코셔) 식품점을 노렸다. 이 과정에서 4명의 유대인이 살해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파리 행진’ 맨 앞줄에 섰던 이유도 유대인의 희생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파리 시민이 저마다 펜을 들고 언론의 자유를 외쳤던 것처럼 프랑스에 만연한 ‘반(反)유대주의’ 풍조에도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소 반유대주의로 인해 유럽에서 차별과 위협을 느껴왔던 유대인들로서는 코셔 식품점에서 희생당한 유대인 4명의 죽음이 언론인의 희생보다 홀대받는다고 느꼈던 것이다. 


좌파 유대인 진영에서는 파리 테러와 비슷한 시기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졌던 참상에 무심한 유럽인을 비꼬았다. 파리 테러로 17명의 희생자가 나왔을 때 마침 나이지리아의 급진 무장단체 보코하람은 민간인 2000명을 살해했다. 보코하람은 어린이까지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했다. 하지만 파리 테러 앞에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학살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만약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보코하람 테러를 규탄하는 ‘나이지리아 행진’을 벌였다면 유럽 정상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나이지리아를 찾았을까?” 좌파 유대인 진영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유럽 중심주의에 갇혀 있는 유럽인을 꼬집었다. 


인간은 반복되는 자극에 둔감해진다. 파리 시민 역시 빈번하게 터지는 반유대주의 사건·사고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계속돼 온 보코하람의 민간인 학살 뉴스에 유럽인의 관성이 생겼을 수도 있다. 4년을 넘긴 시리아 내전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이 무감각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정작 이러한 상황은 파리 시민과 유럽인을 비판한 이스라엘이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지난달 2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 한복판에서 ‘묻지마 칼부림’ 테러가 일어났다. 불법 체류자 신분의 팔레스타인 청년이 출근길 버스에 올라타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운전기사를 포함해 12명의 무고한 텔아비브 시민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놀라운 건 텔아비브 시장의 대응 태도였다. 그 시각 텔아비브 시장은 아침 운동에 여념이 없었다. 운동 중이던 시장은 테러 보고를 받고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대신 경찰과 구급대에 지시를 내린 뒤 남은 운동을 모두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 응한 시장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자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에 언론도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다. 


우리나라였다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묻지마 테러가 발생했는데 서울 시장이 운동 중이었다는 이유로 원격 지시를 내린 꼴이었다. 당장 전국민적인 분노가 일었겠지만 매일 새로운 테러가 터지고 국경에서 로켓포가 떨어지는 이스라엘에서 이 정도 참사는 시민들에게 별다른 자극이 못됐던 것 같다. 


중동에 있다보니 웬만한 죽음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신문을 펼치면 지역 뉴스 대부분은 테러와 납치·살해, 산발적 군사 교전으로 얼룩져 있다. 수십 년째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고만 있는 이유도 테러와 전쟁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채 관성을 깨트리지 못하는 지도자, 시민들의 무감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얼마 전 IS(이슬람국가)는 일본 정부의 협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저널리스트를 살해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뒤로 수갑을 찬 채 엎드려 있는 인질의 허리 위로 참수된 피투성이 머리가 올려져 있었다. 며칠 뒤 IS는 역시 인질로 잡고 있던 요르단 조종사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인 영상을 공개했다. 갈수록 잔인한 행태를 보이는 IS 역시 웬만한 죽음에는 내성이 생겨버린 일부 세태가 만든 괴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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