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역할 바뀌는 '폴리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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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언론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권력과 언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화 작용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폴리널리스트(정치인과 언론인의 합성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권력을 갈망하는 언론인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기자 출신 정치인’이었다가, ‘정치인 출신 방송인’으로 슬그머니 복귀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정치인과 언론인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이름표를 바꿔다는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언론인, 하루아침에 청와대로 직행


지난 23일, 또 한 명의 언론인의 청와대행이 구설에 휘말렸다. 주인공은 신설된 청와대 사회문화특보로 임명된 김성우 전 SBS 기획본부장. 그는 청와대 발표 당일까지도 SBS 기획본부장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가 ‘겸임’ 논란이 일자 뒤늦게 사표를 제출해 뒷말을 낳았다. 청와대 특보단이 ‘무보수 명예직’이고 미디어 전문가로서 정책 자문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에 겸직 자체가 법적·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옹호론’도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여하는 등 국정에 의견을 개진하는 특보 역할을 보도국장 출신의 언론사 임원이 겸임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김 특보의 사표 제출로 ‘겸임’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청와대의 무리한 현직 언론인 기용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앞서 이명박 정부 때도 홍상표 홍보수석(YTN)과 그의 후임이었던 김두우 수석(중앙일보), 김은혜 대변인(MBC), 유성식 선임 행정관(한국일보) 등이 현직에 있다 청와대로 직행해 비난을 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제 막 집권 3년차에 들어섰을 뿐인데 현직 언론인 기용만 벌써 네 번째다. 박근혜 정부 초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남기 전 수석은 내정 당일까지 SBS미디어홀딩스 사장이었고, 윤두현 현 홍보수석도 YTN플러스 사장을 하다 바로 청와대의 부름을 받았다. 압권은 민경욱 대변인이었다. 민 대변인은 임명 당일 오전 KBS 보도국 문화부장으로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기사 승인까지 내린 지 2시간 만에 청와대로 ‘순간이동’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민 대변인은 당시 청와대 보안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KBS 기자들은 “마지막 남은 KBS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며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언론인 출신을 중용해왔다. 지난 23일 김성우 특보와 함께 특보단에 합류한 신성호 홍보특보는 중앙일보 출신으로 사회부장과 사회담당 부국장, 수석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중앙일보 퇴사 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광삼 신임 청와대 춘추관장도 서울신문 기자 출신이다. 김영섭 대통령비서실 행정관도 연합뉴스에서 사회부 기자를 시작으로 미주특파원, 홍보기획부장, 기사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성추문으로 불명예 낙마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문화일보 논설위원 출신 언론인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끊이지 않는 SBS 고위 간부 출신의 청와대행도 주목할 만하다. 박근혜 정부의 이남기 전 홍보수석과 김성우 사회문화특보 외에 이명박 정부 시절 최금락 홍보수석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등 청와대 수석급 이상 세 명이 모두 SBS 출신이었다. 언론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SBS 한 기자도 “SBS 독립성과 신뢰도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채수현 SBS노조 위원장은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SBS가 청와대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과 공식적인 라인이 형성되는 셈인데, 매우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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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방송인 ‘변신’


언론인 출신 정치인, 즉 ‘폴리널리스트’들의 방송 복귀도 최근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이 이들 폴리널리스트의 화려한 복귀 무대가 되어주고 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MBN이다. MBN은 지난해 6월 KBS 앵커 출신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서 4선 의원까지 지낸 이윤성 전 국회부의장을 주말 종합뉴스인 ‘뉴스8’ 진행자로 발탁했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 2009년 7월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을 대신해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한 미디어법을 직접 통과시킨 주역이다. 종편을 탄생시킨 미디어법 처리의 핵심 당사자가 의원직을 상실한 뒤 종편 출범의 수혜를 입은 셈이다.


이 전 부의장이 ‘당적 회복’을 이유로 갑작스레 하차를 선언한 뒤 후임으로 발탁한 앵커 역시 새누리당 의원 출신인 유정현 전 아나운서다. 유 전 의원은 1993년 SBS 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1998년 퇴사해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엔 다수의 종편과 케이블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은혜 전 MBC 기자도 지난해 9월부터 MBN에서 시사프로그램 ‘뉴스&이슈’를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 ‘여당 출신’인 셈이다. 특정 정치색을 띠는 ‘폴리널리스트’의 이력이 뉴스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MBN은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MBN 관계자는 “정파성과 무관하게 오랜 방송 경험이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 평가해 진행자로 선정한 것”이라며 “뉴스를 진행할 때도 기자가 취재한 리포트를 전달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정파성이 드러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정파에 몸담았던 만큼, 방송 진행 과정에서 이념적인 편향성이 드러나는 사례도 잦다.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까지 지낸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해 5월부터 채널A에서 ‘이동관의 노크’란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 전 수석은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고승덕 후보 논란을 언급하며 “(유권자들이) 역선택을 할까 걱정된다”며 보수진영을 편드는 발언을 해 공정성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선일보 출신인 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도 많은 ‘어록’을 남겼다. TV조선 ‘황금펀치’ 진행을 맡고 있는 진 전 의원은 같은 방송의 ‘돌아온 저격수다’에 출연하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 “단체 관광단을 구성해서 저(북한) 수용소에 한번 보냈으면 좋겠다”고 하거나,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국민들의 혈세를 빼먹는 귀족노조”라는 등 편향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언론과 정치를 오락가락 하는 폴리널리스트들의 행보가 언론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법적으로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도 있다.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12월 공직선거에 입후보하는 종편 출연 방송인도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퇴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자 사회 내부의 자정 노력도 있다. 전북기자협회는 지난해 7월 폴리널리스트의 언론사 복귀를 2년간 제한하는 규약을 제정했다. 소속 언론사가 선거캠프, 자치단체, 행정기관 등에서 근무한 폴리널리스트를 퇴직 후 2년 안에 채용할 경우 소명절차를 거친 후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율규제이지만, 지키지 않을 때 페널티를 주는 강제 규정도 필요하다”며 “언론인은 누구보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고 고위 공직자만큼이나 국민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선거뿐 아니라 임명직에도 그대로 적용해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 역시 언론사 일을 그만 두고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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