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저널리즘에 이식한 권혜진 기자

[기자가 말하는 기자]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

▲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

얼마 전 이 코너에서 안수찬 기자에게 ‘기습’을 당했다. 나에 대한 그의 평가는 온당치 않다. 난 늘 새로움에 도전했지만, 그러나 늘 실패만 거듭했다. 오히려 안 기자야말로 시간이 지날수록 보태지는 길을 가고 있다. 그와 같은 후배 언론인이 한 명 더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리서치 디렉터인 권혜진 전 동아일보 기자다.


그를 처음 본 것은 1990년대 중앙일보에서다. 데이터 전문가였던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저널리즘 과정에 깊숙이 이식시키고 싶어했다. 데이터분석을 취재의 보조수단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던 시절에 ‘불온한’ 생각을 품은 것이다. 이후 그는 동아일보로 옮겨 기자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년 가까이 탐사보도 관련 공식, 비공식 모임에서 그를 만나왔다. 권 기자는 늘 외국사례를 수집하고 국내 상황을 정리하며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을 선보이려 궁리했다. 뜻을 함께 하는 동료 언론인을 도와주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언론 뉴스룸의 혁신성은 일류는 물론 이류도 안 된다. 전체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수준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뉴스생산구조의 혁신성이 그렇다. 특히 데이터저널리즘의 토대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주류 언론 중 KBS과 연합뉴스 등을 제외하고 데이터저널리즘 팀을 보유 중인 곳은 사실상 없다. 빅데이터 시대를 찬양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적어도 권 기자가 소속돼 있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는 다르다. 기자, PD, 촬영, 그래픽 등 총 정규 제작인력이 40명이 안 되는 뉴스룸에 팀장인 권 기자를 포함해 4명의 데이터 담당기자가 활동한다. 우리 언론계에서 데이터전문가와 저널리스트 사이에는 깊은 골이 놓여있다. 언론의 공진(共振)을 막는 캐즘(chasm)같은 존재다. 권 기자는 두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인물이다. 그는 데이터분석을 저널리즘의 틀 안에 끌고 들어왔다. 그의 시도가 아직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킨 것만은 분명하다. 난 늘 실패만 했는데 안수찬 기자와 더불어 권 기자는 늘 자신의 영역에서 진보했고, 지금도 그렇다.

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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