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에 미혹돼 여기까지 왔다

[기자가 말하는 기자]서울신문 박록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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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박록삼 기자

그의 글은 유혹이었다. 북방의 빼곡한 자작나무 껍질을 날카롭게 부비며 지나는 바람이었다. 또는 출근 시간 지난 성긴 지하철의 한가로운 고독함이었다. 찌그러진 막걸리 사발의 슬픈 취기였다. 그의 삶은 또다른 글이었다. 1980년의 광주 원혼과 러시아 벌판 위 카레이스키의 거친 여정, 중국의 누런 흙을 내달리는 홍군의 고장난 총, 그리고 갈라진 나라 백성의 배고픔이 조각조각으로 깊고 낮게 박혀 있었다.


정철훈은 국민일보 문학기자였다. 지난해 8월까지였다. 지금은 술꾼이고, 시인이고, 소설가다. 1997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시로 등단했다. 2000년 시집 ‘살고 싶은 아침’을 낸 뒤 이제껏 다섯 권의 시집을 냈고, ‘인간의 악보’(2006)를 비롯해 네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시 써서 먹고 살지 못하는 세상에서 소설이라고 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작가 오디세이’ 등 문단 언저리 책 몇 권을 썼다. 어떤 인연이었는지 2005년 그의 시집 ‘개같은 신념’을 읽게 됐다. 전형적인 리얼리즘 시인도, 그렇다고 실존주의 시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해체의 시어를, 삶에 뿌리 내린 핍진한 정서로 구사하는 묘한 매력의 시편들이었다. 기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는 정철훈의 기사 문장이 궁금해졌다.


그와 직접 만난 것은 2008년이었다. 벌교 태백산맥문학관 앞길에서 소주잔에 꼬막피 묻혀가며 봤고, 체부동 시장통 막걸리 탁자에서 벌러덩 넘어지면서 봤고, 중국 시안 뒷골목에서 밤새도록 양꼬치 쌓아가며 봤다. 시와 소설을 쓰는 기자가 궁금했지만, 늘 술만 진탕 먹었다. 중국 연안대학 ‘중국인민해방군가’ 동판 앞에 서서 이 노래를 만든, 중국 3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인 정율성(1914~1976)이 그의 백부 정추와 반세기 너머 친교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정철훈은 일본에서 은둔하던 ‘잉여인간’의 소설가 손창섭을 만났고, 백석의 시세계를 꼼꼼히 조명했던 것 같다. 시인, 소설가의 삶과 삶 사이를 기자인 듯, 작가인 듯 낫낫한 자세로 어슬렁거렸다. 이제 다른 건 몰라도, 술 먹으며 어슬렁거리는 것쯤은 흉내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서울신문 박록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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