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가스 요사, 잉카와 우주인 그리고 인간

[스페셜리스트│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3년 전인가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노벨 문학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 피식 웃었다. 이 페루 출신 작가의 치정이랄까, 불륜이 떠올라서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고 올해 초 세상을 떠났던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와의 해프닝이었다. 1976년 멕시코 한 극장에서 마르케스는 요사에게 주먹을 날렸다. 여덟 살 많은 마르케스의 부인을 찾아가 수작을 걸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페루 출장을 다녀왔다. 기자에게는 우선 요사의 나라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역시 잉카 문명과 나스카의 나라일 것이다. 


마추픽추는 너무나 잘 알려진 문명이니 다른 하나를 소개하자면, 사크사우아만(Sacsayhuaman)이라는 유적이 있다. 페루의 정치적 수도는 리마지만, 문화적 정신적 수도는 쿠스코(Cusco). 쿠스코는 잉카의 언어였던 케추아어로 ‘배꼽’이란 뜻이다. 잉카 문명의 배꼽이었던 이 도시의 메인 광장에서 2㎞를 걸으면 사크사우아만이 등장한다.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전이자, 적을 막기 위한 요새이며, 사람의 힘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정교한 건축물이다. 가로세로 9m, 무게는 120톤에 달하는 거대한 암석을 공깃돌 다루듯 한 풍경을 만난다. 돌과 돌 사이의 이음새는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을 만큼 정교하다. 얼추 1000년 전에 이런 문명을 완성하다니. 


후세 연구에 의하면 잉카문명에는 바퀴와 철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따라온다. 이 지역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거대한 돌을 어떻게 가져왔으며, 비록 가져왔다 하더라도 철기도 아닌 청동기 수준 장비로 어찌 이 거대한 암석을 능수능란하게 다듬었냐는 것. 비행기를 타고 봐야 그 형태가 뭔지를 알 수 있다는 거대한 나스카 라인도 마찬가지다.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발 나를 설득해줘”라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문득 소년 시절이 떠올랐다. 70~80년대에 유년을 보낸 세대에게는 ‘소년중앙’ ‘새소년’ ‘보물섬’ 등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만화잡지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빼놓지 않고 ‘세계 7대 불가사의’ ‘납량특집-외계인은 존재하는가’ 등의 기획 특집을 빼놓지 않았다. 태양의 제국 잉카 문명(약 1200~1533년)도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잉카 문명에는 활자가 없었다. 따라서 기록은 존재하지 않고,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그러니 온갖 설이 나온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페루의 젊은 친구들은 외계인 가설을 단호히 부정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신과 외계인이 한 일이라고 말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쉽겠느냐고 말이다. 그리스 비극의 극작술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용어가 있다.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단박에 해결해버린다는 뜻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소재가 되었던 문명 중 하나도 잉카. 이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스필버그 감독의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역시 마지막은 외계인에 의존했다. 이 흥미롭던 영화가 그렇게 허무해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시 바르가스 요사로 돌아온다.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웃음이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뭐랄까. 위대한 작가도 역시 별 수 없는 인간임을 확인한 연민 때문이라고 할까. 연민의 대상도, 또 연민의 주체도 결국 인간이다.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주체 역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라, 인간이다. 답은 인간에게 있다. 페루 출장에서 재확인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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