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받아쓰기 '모뉴엘 오보'

빌 게이츠 2007년 CES 연설
어디에도 모뉴엘 언급 없어
권순우 MTN 기자 "오보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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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서류를 조작해 3조원이 넘는 사기대출을 받아 논란이 된 중견가전기업 모뉴엘 관련 기사에는 ‘빌 게이츠가 주목한’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최근 이 수식어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권순우 MTN 기자는 지난 17일 온라인에 ‘빌 게이츠는 모뉴엘을 몰랐다!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에 따르면 2007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앞으로는 홈 엔터테인먼트 PC 시장이 성장할 것이고, 모뉴엘 같은 회사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권 기자는 “모뉴엘을 언급했다는 빌 게이츠의 기조연설은 유튜브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연설 어디에서도 ‘모뉴엘’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며 “소니, 도시바 등 몇몇 업체가 언급되긴 하지만 빌 게이츠가 이날 했던 이야기는 윈도우 비스타가 하드웨어의 기능을 향상 시켜줄 것이라는 내용이다. 단지 윈도우 비스타가 탑재된 여러 종류의 컴퓨터들을 보여줄 때 모뉴엘 제품이 스치듯 지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가 모뉴엘을 언급했다는 말은 2010년 IT 전문매체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종합일간지, 경제지, 주간지 등에서 기사와 사설, 칼럼을 가리지 않고 인용됐다. 관련 기사만 무려 400여개가 된다. 2011년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이 보고서를 쓴 연구원은 “기사를 참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권 기자는 “그 많은 언론 중 단 한 곳도 빌 게이츠가 모뉴엘에 대해 언급했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라며 “엄중히 은행과 감독당국을 꾸짖는 비판기사, 사설에서도 모뉴엘은 ‘빌 게이츠가 주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은행의 부실한 대출 심사를 지적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문했다. 권 기자는 “모뉴엘이 은행권으로부터 3조원 넘는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이 같은 사회적 평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언론의 문제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뉴엘의 재무제표는 2007년 이후 매년 공개돼 왔고 기자들이 조금만 들여다봤으면 이상한 기업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었다”면서 “은행을 지적하고 있지만 기자들끼리 서로 ‘민망하지 않냐’고 말했던 적도 있다”고 전했다. 


권 기자는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사실 나라고 기자정신이 대단히 뛰어나 관련 영상을 본 건 아니다. 취재원과 말하다 나온 얘기라 찾아봤을 뿐”이라며 “최근 3차례에 걸쳐 모뉴엘 관련 기사를 쓰면서 빌 게이츠를 언급했다. 언론이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있기에 반성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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