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든, 취재진이든 상처 외면받지 않아야"

'트라우마 저널리즘' 연구하는 이정애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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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 SBS 기자

10년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현장에서 깨져가며 배워야 했던 것도, 기자라는 이유로 모든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것도 똑같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통한 반성이 보도국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애 SBS 기자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뉴스추적’에서 사건·사고 현장을 누볐다. ‘트라우마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결정적 계기는 2001년, 성폭행 피해자였던 8살 여자아이를 취재하면서다. 방구석에 웅크려 앉아 스케치북에 검은 칠을 하던 그 아이는 한 병원 소아정신과의 도움으로 입원했지만 “미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친척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이 기자는 큰 좌절감을 느끼고 ‘심리적 외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 기자는 석사논문에서 심리적 외상 피해를 입은 취재원 10명을 인터뷰해 취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지난달 12일 방송학회 세미나에서 이를 공식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언론계가 비로소 심리적 외상이라는 이슈를 제기한 것이다. 


탐사보도에 초점을 맞춘 그의 가이드라인은 △인터뷰 중 취재원이 울더라도 중간에 끊지 않는다(감정표현만으로도 치유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 질문은 취재원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는 기회로 제공한다 △원할 경우 편집방향 등을 방송 전에 이야기해 준다 등 취재과정별로 구성돼 있다. 


이 기자는 “취재원들은 자기 얘기를 꺼내고 나면 며칠씩 앓아눕기도 한다. 그만큼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더라도 사회적 지지가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2011년 연수를 갔던 컬럼비아 대학교 부설 ‘다트센터’의 요청으로 최근 세월호 취재기자 10명을 인터뷰,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언론단체가 함께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한 것은 의미있다”면서도 데일리뉴스·특보, 자연재해·인재 등 뉴스형식과 사고유형별 세부 준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를 숙지하기 위한 교육은 물론 보도국 내에서 가이드라인에 대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이 기자는 ‘기자의 심리적 외상’에도 주목했다. 기자 스스로의 상태를 깨달아야 취재원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기자도 처음부터 취재원의 심리적 외상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탐사보도 기자로서 생명의 위협,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기력 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자는 “나도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걸 전혀 얘기한 적이 없다”며 “세월호 취재기자들도 ‘괜찮냐고 물어봐 준 건 이 선배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의 경우 보도국 내 ‘피어 서포터(peer supporter)’가 있어 동료와 선후배들이 트라우마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한 사건 현장에 같은 기자가 오랫동안 머물지는 않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이 기자는 “피해자든 취재진이든, 서로 상처를 외면하지 않아야 더 건강하게 세상을 보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며 “무대세트, CG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본질적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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