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

제28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 한겨레신문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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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같이 착했다.
SK하이닉스의 ‘백혈병 문제’를 취재하던 지난 4개월 동안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피해 노동자들과 유족들은 참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었다. 회사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박복한 삶을 탓했다. 자신의 질병이 회사 일 때문이라고 여기면서도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돼 2년치 급여를 받고 회사를 나온 것에 ‘감사’했고, 20여년을 일하다 병을 얻은 남편에게 퇴사를 종용하는 회사를 규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이해’했다.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한 뒤 따라오는 숙주반응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아내에게 짜증 한 번 안 낸 ‘애처가들’이었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위해 가늠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진통제로 마지막 가족여행길을 버틴 ‘딸바보들’이었다. 공부도 잘했지만 부모 생각한다며 대학 안 가고 취업한 미안하고 대견한 ‘아들들’이었다. 몸을 갈아먹는 ‘잔인한 노동’을 견디며 자식 노릇, 부모 노릇을 건사해 낸 평범하되 비범한 우리네 노동자들이었다. 


국내 ‘반도체 및 전자부품 산업’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2011년 11월 대한상공회의소는 ‘산업구조의 변천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최근 10년간 한국경제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업종 1위가 ‘반도체 및 전자부품’업종이라고 발표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었다. 


그 쌀을 생산하다 병을 얻은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해 기업은 회유와 협박을 벌였다. ‘근로복지공단’은 그 이름이 머쓱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은 불승인되기 일쑤였다.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발생률을 조사한 자료는 없었다. 반도체 노동자들을 위해 수행했다는 정부의 역학조사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사업장의 종합 안전진단 결과, 유해물질과 위험요소가 드러났지만 기업의 영업비밀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이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기업 뒤에 숨은 정부는 노동자들에게만 모질었다.


집보다 일이 먼저였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했을 뿐인 착한 노동자들이 백혈병 같은 희귀병에 걸려 세상을 등지는 동안, 한국은 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가 되었다. 스마트폰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져 있다. 우리가 착한 노동자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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