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역사전쟁 뒤로는 군사경쟁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중국은 요즘 역사에 푹 빠졌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중반에 꽂혀 있다. 신문은 연일 일본의 우경화를 성토하는 글로 도배를 하고 있고, 방송은 하루 종일 항일 전쟁 드라마를 틀고 있다. 국제 금융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상하이(上海)의 고층 건물 외벽에 ‘국가적 치욕을 잊지 말자(勿忘國恥)’는 조명등을 설치할 정도다.


그 정점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있다. 그는 지난 7월7일 중국의 전면적인 항일 전쟁을 촉발한 7·7 루거우차오(蘆溝橋) 사변 및 인민전면항전 77주년을 맞아 베이징(北京) 근교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 “명백한 역사적 사실과 수천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도 부정한 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중국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현 정부와 우익 세력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중국 국가주석이 인민항일전쟁 기념행사에 참석, 보란 듯이 일본을 비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최고지도자가 일본과의 역사 전쟁을 주도하다 보니 정부 부처들도 가만 있을 수 없다. 중국 외교부가 올해 일본 관동군이 주둔하며 만행을 저지른 선양(瀋陽), 일본군에 의해 30여만명의 중국인이 희생된 난징(南京)의 난징대학살희생자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마련된 하얼빈(哈爾賓) 등으로 외신 기자들을 초청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 외교부는 또 1일 일본군이 1945년 8월 중국에 항복한 후난(湖南)성 즈장(芷江)의 중국항일전쟁항복수락기념관으로도 외국 기자들을 초대했다. 3일에는 올해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항일전쟁승리기념일’ 행사를 크게 치를 예정이다. 18일에는 일본군의 만주 침략 도화선이 됐던 만주사변 83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식도 거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이처럼 일본의 과거 침략성을 부각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안으로는 군비를 크게 늘리고 강군(强軍)으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에 더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중국의 올해 국방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12.2% 늘어난 8082억2000만위안(약 134조원)에 달한다. 중국은 매년 국방비를 두 자릿수 이상 늘려왔다. 실질적인 국방비는 공식 발표보다 20% 이상 많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군다나 시 주석은 연일 강군의 건설을 주문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제17차 단체학습 자리에서 전 세계 국방·군사 분야의 변화를 ‘새로운 군사혁명’으로 규정한 뒤 △강군의 목표를 결연히 견지하고 △정보화 전쟁과 공동 작전을 중시하며 △군 혁신과 개혁을 중점 추진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인민해방군 총정치부는 최근 ‘시 주석 국방 군대 건설 중요 강연 독본’을 출판, 전군과 무장부대가 모두 이 책을 학습하도록 지시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시 주석은 이미 2012년 12월 “중국의 꿈은 강국의 꿈이며, 이는 바로 강군의 꿈”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중국만 군사력을 키우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도 2015 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 방위예산(미군기지 유지 등 포함)을 전년 대비 3.5% 증가한 5조540억엔(약 50조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싸울 수 있는 정상국가’가 되겠다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까지 변경했다. 중국을 견제하고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는 미국은 이러한 일본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전쟁 뒤엔 이처럼 숨가쁜 양국 간 군비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반도가 있다. 우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바로 옆의 양 강대국은 결의를 다지며 똘똘 뭉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남북으로 갈려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고, 최근에는 대화조차 없다. 사회도 통합보단 분열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 군대는 국민들에게 안심을 주긴커녕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돼 버렸다. 민족과 국가의 불행을 막기 위해 통일과 통합의 통 큰 지도력이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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