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다시보기] 미국의 전시언론통제

<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국제분쟁 전문기자>





“전통적으로 침묵해 왔다.”

요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놓고 정례기자회견에 등장하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흔히 쓰는 말이다.

이건 군 작전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답하지 않겠다는 의미인데, 미국 정부의 전시언론통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이다. 군 작전의 개념과 한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미국 정부는 선전할만한 사실만 언론에 주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은 표현이다.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라.”

국방성의 협조요청, 이건 직접적인 전시언론통제의 한 수법으로 아예 언론을 협박한 사례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이에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지면과 화면에 시말서-반성문이라 해도 좋고-를 올리며 ‘그렇게 하겠노라’ 다짐하는 것으로 전시협력체제를 과시했다. 이래서 미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부가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를 통해 그 전쟁을 지지할 수도 또 반대할 수도 있다는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해버린 셈이다.

어쨌든 본격적인 ‘전시언론통제’라는 말은 한국전쟁에서부터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이전에는 정부가 필요한 전시 정보를 언론에 대신 써주는 실정이었고 종군기자라는 직업 자체도 군인들의 보직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2차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지 않는 ‘애국적 언론관’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언론이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다는 건 익숙치 않은 일이기도 했다.

이런 언론들이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거부하며 나름대로 전쟁보도의 독립성을 획득하는 시기를 베트남전쟁으로 보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자본을 축적한 거대 언론사들의 출현과 전시 언론의 자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말하자면 베트남전쟁은 돈 많은 언론사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자사의 종군기자들을 전선으로 파견해서 최초로 자유롭게 전쟁을 취재하고 독립적으로 보도한 유일한 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제한없이 전선을 취재할 수 있었던 종군기자들은 인류 최초로 전쟁에서 자국군의 부정적인 면을 보도하면서 언론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시민들이 처음으로 언론을 통해 전쟁에서 자국군이 패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도, 전선에 파견된 자식들의 만행을 접하면서 적에 대한 동정심을 느낄 수 있었던것도 모두 베트남전쟁에서부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베트남전쟁을 통한 전쟁보도의 비약적인 발전은 동시에 전쟁보도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언론이 베트남전쟁을 망쳤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미국 정부와 군부 내에서는 패전의 원인을 언론에 돌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군의 야만성을 폭로해 반전운동을 폭발적으로 고양시킨 것도, 심지어 사전보도로 미군의 희생을 초래케 한 것도, 또 작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 것도 모조리 언론 탓으로 돌리며.

그로부터 미국의 모든 전쟁은 강화된 전시언론통제를 통해 철저하게 언론을 배제한 채 진행됐고, 결국 실질적인 종군기자의 맥(脈)도 베트남전쟁을 끝으로 끊겨버렸다.

미군은 파나마침공 때도 우호적인 10여개 언론사 기자들만 군용기로 태워가서 합숙소에 집어넣은 뒤 ‘아름다운’ 전쟁만을 제공했고, 걸프전쟁과 코소보전쟁에서는 국방부가 직접 환상적인 필름을 제공하며 전쟁을 희화시켰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이제 ‘장막전’이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세상은 알 수가 없고, 언론도 없다.

‘미군은 정의롭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 세상에는 미국 전시언론통제의 유일한 목표만 있을 뿐이다. 정문태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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