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를 사랑하기에…흔들리지 않아요"

[인터뷰]강나루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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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나루 KBS 기자  
 
2년 전 파업과 달리 외롭지 않아
권력개입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저는 회사가 너무 좋아요. 열심히 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나가서 KBS가 잘 한다는 소리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글을 올린 거예요. 제가 사랑하는 이 조직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KBS 공채 38기 강나루 기자. 그의 기수는 선배들 사이에서 ‘파업둥이’로 불린다. 2011년 8월 입사한 지 반년 만에 공정방송 사수 파업에 돌입하며 95일간 참 열심히도 싸웠다. 그리고 2년 만에, 또 다시 파업이다. 하지만 2년 전과 달리 이번엔 외롭지 않다. 다수 노조인 KBS노동조합이 연대했고, 팀장부터 국장급까지 대다수 보직간부들도 뜻을 같이 하고 있다.

한 달 전, 사내게시판에 ‘세월호 보도 반성문’을 올릴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급변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냉대와 불신을 받으며 설움을 삼켰던 강 기자는 동기들과 아래 두 기수 후배들의 뜻을 모아 반성문을 올렸다. 이것이 발화점이 되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항의방문과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세월호 보도에 대한 참회는 사장 퇴진 투쟁으로 이어졌다.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언론학개론에 나올 법한 사장의 행위가 노조도 아니고 보도국장의 폭로를 통해서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표면화 됐어요. 그동안 쉬쉬하거나 추정만 해왔던 권력의 개입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는데, 그걸 들은 기자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기자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겁니다.”

팽목항에서 마주한 실종자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고두고 그를 괴롭히는 기억이라면, 지난달 8일 유가족들의 KBS 항의 방문은 잊을 수 없는 고통이다. 세월호 희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에 격분한 유가족들이 자식의 영정사진을 들고 KBS 앞을 찾아온 이날은 마침 어버이날이었다. “밤 10시쯤이었을 거예요. 퇴근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더라고요. 어머니 중 한 분이 자식의 영정 사진을 소매로 닦으면서 펑펑 우시는데, 이건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그 장소에 와서 그 어머니가 무슨 심정으로 영정 사진을 닦았는지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예요.”

길환영 사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순수 유가족’이 아니라며 외면했고, 버텼다. 다음날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하자 그제야 달려가 사과했다. “너무 뻔뻔하고 수치스러워요. 청와대 요청을 받고 쪼르르 달려가는 모양새가 우습지 않나요?” 하지만 길 사장은 “청와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뉴스 배열까지 간섭하고, “해경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려놓고는 “PD 출신이라 보도를 잘 몰라서 그랬다”거나 “단순한 의견 개진”이라고 변명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사장 퇴진 여론이 모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KBS 기자협회에선 가장 먼저 지난달 19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팀장과 부장들까지 보직을 사퇴하고 업무를 거부하면서 KBS 보도국은 보름 넘게 텅 빈 상태다. 마이크를 내려놓기까지, 그도 고민이 많았다. 제작거부가 아닌 보도투쟁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유일한 무기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닌가. 처음엔 그랬다.

“2년 전 파업에서 지고 보도국에 올라가면서 그때도 보도투쟁을 얘기했었죠. 그런데 못했어요. 이번에도 하루 이틀은 반성보도를 내보냈죠. 돌아가면 처음 며칠은 받아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요? 보도투쟁이 흐지부지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큰 돌을 던져서 충격을 주고 그런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기자는 “청와대나 권력에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너희 뜻대로 입맛대로 MBC처럼 망가뜨리고 싶겠지만 우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줘야 해요. 그래야 다음 사장이 누가 오더라도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파업은 5일 이사회의 결단으로 끝날 수도, 무기한 길어질 수도 있다. 설사 길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벽이 버티고 있고, 다시 같은 싸움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도, 조바심도 갖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KBS라는 조직이 자랑스러운 일터가 되길 바란다. 회사에서 자랑하는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가 “허상이 아닌 진짜”이길 소원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신뢰받는 뉴스”. 그런 뉴스를 하는 KBS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파업 밖에 다른 수단이 없다면 또 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은 양심적인 언론인으로서 기본적이고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흔들림 없고 마음도 평안합니다. 이 파업이 승리하든, 길 사장이 웃든 언젠가는 돌아갈 텐데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할 거예요. ‘파업둥이’가 아닌 진짜 취재 잘 하는 기자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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