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조작의 유혹'에 빠지다
지자체-언론, 짬짜미 여론몰이…조사 방법 따라 민의 조작 가능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2014.03.12 13:07:13
|
 |
|
|
|
▲ 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90일 앞둔 6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
|
|
유리한 조사 미끼로 금품 요구하기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일부 공무원들이 현직 단체장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지역신문이나 인터넷매체에 사주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 공무원들은 재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강운태 현 시장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터넷 언론매체에 불법 유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광명시 공무원들은 지역신문 대표를 사주해 양기대 시장에게 유리하도록 설문을 만들어 여론조사를 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심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한 여론조사가 ‘여론몰이’를 위한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여론조사는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와 2011년 4·27재·보선 선거를 거치면서 신뢰도가 바닥까지 추락했다. 특히 4·27재·보선 선거에선 20%포인트까지 여론조사에서 뒤진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면서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선거 초반부터 ‘기선 잡기’가 필요한 후보들은 여론조사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칠 수 없고, 여기에 지자체 광고 수주 등 지역 중소매체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유착되는 폐단을 낳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 예정인 지방단체장 캠프 관계자는 “여론조사는 선거 초반 판세를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며 “여론조사 판도에 따라 외부 지원과 협조에서 차이가 날 수 있어 선거에 뛰어든 후보라면 여론조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와 이에 따른 보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민의’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언론사나 기관이 조사기관에 조사방법을 어떻게 의뢰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인데, 전화 설문조사를 할 경우엔 50~60대 지지율이 높은 후보자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통하면 젊은 층에 폭 넓은 지지를 얻은 후보자에게 유리하다. 조사기관이 조사결과를 왜곡하거나 조작한 것은 아니지만, 의도한 결과에 접근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부 지역 중소매체나 인터넷매체가 여론조사를 미끼로 후보자들에게 설문조사 비용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한 지역 언론사에 500만원씩을 건넨 조용수 울산 중구청장과 정천석 울산 동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 되기도 했다. 여론조사가 민의를 나타내기보다는 후보자들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여론조사기관의 난립에 따른 ‘과열 덤핑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인건비도 나오지 않은 의뢰가 횡행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는 조사기관의 전문성 문제로 이어져, 함량 미달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런 조사가 아무런 여과 없이 배포되고, 또 다른 언론사들이 받아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지난 3일부터 여론 조사를 실시한 언론사는 물론이고, 이를 인용 보도한 기사에 대해서도 응답률 등을 보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응답률의 경우 그동안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지만, 함량 미달의 여론 조사가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에 강화한 것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 또는 보도하는 때에는 조사 의뢰자와 조사기관·단체명, 피조사자의 선정방법, 표본의 크기(연령대별·성별 표본의 크기 포함), 조사지역·일시·방법, 표본오차율, 응답률, 질문내용, 조사된 연령대별·성별 표본 크기의 오차를 보정한 방법 등을 함께 밝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의 경마식 보도가 더해져, 제목을 선정적으로 뽑거나 기사 내용을 압승으로 몰고 가는 보도행태도 잘못된 여론조사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심미선 순천향대 교수는 “의도를 가진 여론조사라도 과정이 타당할 경우 막을 방안이 없다”면서 “외국의 경우 잘못된 여론조사를 공표한 여론조사기관이나 언론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아 문을 닫은 것처럼 유권자들의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창남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