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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로 내몰린 이 세상 ‘B’들을 위한 진혼곡

‘2013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한 최혁곤 경향신문 기자

강진아 기자2013.12.25 13:27:35


   
 
  ▲ 최혁곤 경향신문 기자  
 
한국추리작가협회가 ‘2013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에 올해 1월 ‘B파일’을 출간한 최혁곤 작가를 선정했다. 경향신문 편집부 기자인 최 작가는 지난 2003년 등단해 추리소설계에서 활동한 지 올해 10년이 됐다. 최 기자는 “실력에 비해 과분한 상을 받았다”며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알겠다”고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바쁜 기자 생활이지만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는 최 기자. 해마다 끊이지 않고 단편소설을 내놓았지만 장편소설은 지난 2006년 ‘B컷’ 이후 7년만이다. 지난 3년간 틈틈이 준비한 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쓰고 싶었다”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삶에 대한 애환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최 기자의 소설은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 범죄가 발생한 사회적 동기를 추적하며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들춰낸다. 두 작품의 내용은 다르지만 제목의 ‘B’가 공통된다. B컷은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사진을 뜻하고, B파일은 소설 속 사회에서 쓸모없는 ‘잉여인간’의 의미로 쓰였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이너 인생을 사는, 사회에서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이 대다수다. 살인 누명을 쓴 조선족, 트랜스젠더 킬러, 사업에 실패한 제비족, 가정이 붕괴된 형사, 보스에게 버림받은 조직원, 왕년의 인기에 집착하는 한물간 여배우 등이다. “B는 처절한 생존을 위해 음지로 내몰린 B급 인생들의 상징”이라는 최 기자는 “추리의 재미뿐 아니라 사회의 가려진 모습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긴장감, 속도, 반전 등 추리소설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의 상상력을 더하지만, 그 바탕에는 기자로서의 현실적인 감각이 있다. 사실적인 배경묘사가 손꼽히는 그는 “장면을 꼼꼼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기자로서 평소 많은 정보를 접하는 일상도 도움 된다. “단신 기사들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큼지막한 기사는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알지만, 단신 기사는 묻히는 기사들이 많죠. 이걸 엮으면 하나의 또다른 복합적인 구조가 되죠.”

롤모델은 ‘여명의 눈동자’로 유명한 김성종 작가다.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 마니아였던 최 기자는 “어릴 적 ‘최후의 증인’을 읽지 못했다면 추리작가의 꿈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작가가 1986년 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자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더욱 값지다. 인간관계를 통해 ‘따뜻한 미스터리’를 쓰는 일본 추리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도 좋아한다. 신문기자와 사회파 미스터리를 추구하는 점이 최 기자와 꼭 닮았다.

한국에서 장르 소설의 토양은 척박하다. 비주류 문학인 장르 소설은 B급 문학으로 여겨진다. 추리소설은 일본과 달리 영미권을 그대로 답습해 뿌리가 약하다. 추리작가 수도 절대 부족하다. “100만부를 팔 인기 작가보다 초쇄를 내고 꾸준히 활동할 작가 100명이 필요하다”는 최 기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장르 작가들은 고급 문학을 추구하기보다 문화 자체를 즐긴다.

“장르 소설은 장점이 많아요. 엄격한 문학적 기준을 요하지 않아 진입 장벽이 높지 않죠. 누구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다양한 콘텐츠 활용도 유리하죠.”

올해 10월에는 공동으로 ‘조선의 명탐정들’을 출간했다. 실록 등 역사서에서 발췌한 조선시대 사건을 미스터리로 엮었다. 내년에는 연작으로 발표하고 있는 ‘밤의 노동자’를 출간할 예정이다. ‘B’시리즈 일환으로 도심 재개발 사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도 다룰 예정이다.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를 판다”는 최 기자. 형식이 글일 뿐, 얼마든지 영화, 만화 등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 넓다. 20대 시절부터 7전8기 끝에 30대에 추리작가가 된 그는 글쓰기에 집착하기보다 오롯이 “즐기는” 작가가 되고 싶단다. “나이 들어서도 초쇄, 2쇄 정도만 팔 수 있으면 되지 않냐”고 웃는 그다. “장편 추리소설을 꾸준히 발표하고 싶어요. 쉬워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목표죠. ‘조선의 명탐정들’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퓨전 역사교양서도 또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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