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된 오바마, 떠오르는 힐러리와 크루즈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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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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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일 시작된 연방정부 폐쇄(셧다운) 속에 부각된 정치인 두 사람이 있다. 정치적 색채나 연륜, 성별 등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힐러리 클린턴(66) 전 국무장관과 테드 크루즈(42)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셧다운 몇 시간 전인 9월 30일(현지시간) 저녁. 의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막판 신경전을 벌이던 때, 수도 워싱턴의 한 주택에 워싱턴의 거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걸어 10분 가량 떨어진 매사추세츠 애비뉴 옆에 위치한 단아한 2층 주택의 주인은 힐러리. 출마선언은 안 했지만 2016년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의 워싱턴 집이다. 힐러리 자택에서 이날 처음으로, 그것도 힐러리가 주관하는 선거모금 행사가 열렸다.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뒤 첫 정치 이벤트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을 앞당길 셧다운과 싸우던 때, 미래 권력인 힐러리는 ‘마담 프레지던트’를 향한 첫 정치행사를 조용히 치른 셈이다.
비공개로 열린 행사는 민주당 버지니아 주지사 후보 테리 맥컬리프를 위한 것이었다. 버지니아는 선거 때 민주, 공화 양당을 오가며 후보를 지지하는 ‘스윙 스테이트’로 누구든 대선 승리를 위해 꼭 잡아야 하는 곳이다. 힐러리 입장에서 ‘주지사 맥컬리프’가 꼭 필요한 이유다. 기자는 최소 참가비 500달러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아 집 밖을 서성댈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은 워싱턴에서 떠오르는 권력이 벌써 그리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대선까지는 3년이 남아 있고, 정치적 시계는 이보다 훨씬 길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론 지지율 60%를 넘는 힐러리가 당을 떠나 가장 선호되는 대통령 감이라는 데 이의는 없다. 보수 논객 마이라 아담스는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16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그가 민주당을 넘어 미국의 대안일 수 있음을 예고했다. 힐러리의 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보수화하는 공화당이 더 큰 원인 제공자라는 게 아담스의 생각이다.
공화당의 여전한 보수 바람이 ‘동풍’으로 작용하는 정치인은 힐러리 말고 또 있다. 혜성처럼 나타난 텍사스 출신의 크루즈 의원이다. 마냥 ‘꼴통 보수’로 치부하기에 크루즈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1년 전만 해도 그를 아는 미국인이 많지 않았지만,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첫 당선돼 워싱턴 정치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크루즈는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공화당 대선 예비주자에 이름을 올린 지 한두 달 만에 상위권에 올랐고, 최근 당원 여론조사에서는 1위에 등극했다. 지난 달 밤을 새워가며 한 21시간 연속 연설을 통해 셧다운을 감수하고라도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예산배정을 막아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도 그였다. 또 자신을 지지하는 하원 의원들을 움직여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관철시킨 것은 다른 어떤 공화당 의원들도 하지 못한 일이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크루즈에게 의사봉을 넘기는 게 낫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미국 의회는 ‘크루즈 독감’에 걸린 모습이다.
이런 크루즈를 두고 반대 진영에서는 워싱턴의 풋내기 정치인으로 반공 광풍을 몰고 온 60년 전 조 매카시에 빗대 ‘제2의 매카시’ ‘가짜 약장수’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공화당이 고전하는 히스패닉 출신인 크루즈는 공화당 후보에게 요구되는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난한 쿠바 반체제 인사의 아들인 그는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와 30대에 텍사스 검찰차장을 지냈고 조지 W 부시 정부에서도 일했다. 그의 부친은 단돈 100달러를 속옷에 넣고 미국으로 건너와 접시닦이 생활을 하며 공부해 목사가 됐다. 크루즈는 낙태 반대, 불법이민 규제, 세금인상 반대를 주장, 정책에서는 훨씬 강경한 보수다. 보수유권자 운동 티파티가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 또 티파티를 끌고 가는 정치인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가 보수진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도적 보수주의자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대결구도는 벌써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셧다운이 공화당에 불리한 결과로 끝난다면 크루즈는 사람들이 그가 싫어 보수와 거리를 두는 ‘광인이론’의 주인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힐러리의 행보와 크루즈의 깜짝 등장은 어느 때보다 혼란스런 요즘 워싱턴 정치를 짚는 바로미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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