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 대선 키워드는 '룰라 효과'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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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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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야당 후보를 억지로 만들어낸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이 최근 언론을 향해 터뜨린 불만이다.
룰라는 군사정권(1964~1985년)이 끝난 후 노동자당을 이끌고 1986년 의회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다 득표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룰라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전국구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그러나 이후 룰라는 언론으로부터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다.
룰라는 1989년 대선에서 1차 투표를 거쳐 결선투표에 진출했으나 자유당의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에게 패했다. 룰라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월등히 앞섰으나 언론은 '과격한 좌파' 룰라보다 참신한 이미지를 앞세우며 ‘브라질의 케네디’로 불리던 콜로르에 더 호감을 보였다.
룰라는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상대는 재무장관 시절 하이퍼 인플레를 잡은 브라질사회민주당의 페르난도 엔히케 카르도조. 이번에도 언론은 룰라를 외면했다. 언론은 카르도조의 정책능력을 집중적으로 보도해 지지율을 높여주었고, 결국 룰라는 패배했다. 1998년 대선의 승자 역시 카르도조였다.
1994년 대선은 룰라에게 씁쓸한 기억을 남겼다. 1994년은 미국 월드컵이 열린 해다. 룰라는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자 승리를 자신하며 브라질 경기가 있을 때마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유롭게 TV를 시청했다. 반면 카르도조는 브라질 경기가 있는 날 선거캠프에 기자들을 초청했다. 기자들은 카르도조의 응원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했고, 투표소를 찾은 국민은 룰라보다 카르도조를 더 많이 떠올렸다. 룰라는 1차 투표도 통과하지 못하고 참패했다.
2002년 대선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룰라는 과거와 달랐다. 은행 국유화, 외채동결, 토지개혁, 언론통제 강화 등 급진적인 공약은 사라졌다. 쿠바의 카스트로를 떠올리게 하는 덥수룩한 수염을 가지런히 다듬고 와이셔츠와 청바지 대신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언론은 과감하게 중도실용으로 방향을 전환한 룰라에 호감을 나타냈다. 1차 투표를 통과한 룰라는 결선투표에서 압승을 거뒀다. 세 번의 실패 끝에 언론과의 악연을 털어낸 것이다.
이때부터 룰라와 언론은 팽팽한 관계를 유지했다. 실질적인 승자는 룰라였다.
2005년에 집권당이 의회 법안 통과를 위해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언론의 대대적인 공세 속에 룰라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한때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럼에도 룰라는 2006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10년 대선에서는 자신이 후계자로 내세운 지우마 호세프를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며 또 한번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이제 관심은 2014년 대선으로 향하고 있다. 집권 노동자당 후보는 호세프 대통령이지만, 룰라 없는 호세프는 상상하기 어렵다. 브라질에는 30개 안팎의 정당이 있고,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정책연합 관계로 묶여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연립정부 내에서 갈등이 빚어지면 교통정리는 룰라의 몫이다. 거대 언론의 비판에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주는 것도 룰라다.
룰라가 대선을 앞두고 언론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대선 주자는 호세프를 포함해 4명이다. 여론조사에서 호세프의 예상 득표율은 53~60%로 나왔다. 다른 후보들은 10%대를 넘지 못한다. 호세프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판세임에도 언론이 4파전을 유도한다는 게 룰라의 주장이다.
룰라는 호세프의 재선을 위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선거운동원 자격으로 길거리에서 24시간 호세프를 위한 지원유세를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당은 올해로 집권 10년을 넘겼다. 1980년 2월 창당 선언문을 발표한 룰라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호세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노동자당은 장기집권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노동자당 창업주 룰라의 꿈이기도 하다.
내년 대선 1차 투표는 10월 5일이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득표율 1~2위 후보 간에 10월 26일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룰라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노동자당의 승리를 이끌며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내년 대선에서도 ‘룰라 효과’가 위력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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