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관과 DIA소동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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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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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뉴욕에서 북한의 뉴욕채널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말한 미국에 대한 여러 견해 가운데 하나는 미국은 총을 쏘겠다고 하면 실제로 쏘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핵을 만들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핵을 개발해 한국의 생존과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의 이런 주장을 따를 일은 아니지만 미국에 대해 내린 이들의 판단은 아주 냉정해 보였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감행하는 미국의 모습은 공포였을 법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문제가 미국에 공포감을 던지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한반도에서 한 달 이상 계속된 ‘죄와 벌’ 또는 ‘핵 포커’ 게임이 조금 잦아들던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이 잠든 시각 워싱턴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올 3월에 작성된 국방정보국(DIA) 보고서 가운데 한 문장이 의회에서 공개된 때문이다. 첩보를 다루는 국방부 산하 DIA 보고서는 원래 기밀로 분류된다. 그런데 비공개 보고서 가운데 유독 한 문장만, 그것도 핵폭탄급 내용이 기밀해제로 분류된 것이다.
문제의 내용은 “북한이 신뢰할만한 성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현재 탄도미사일에 의해 운반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한 부분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전배치라는 전략목표에 근접했다는 의미이자 미국마저 북한의 직접 위협권에 든다는 적신호였다.
미국 언론들이 이를 인터넷상에 대서특필하며 파장을 키워 간 것은 물론이다. 언론들은 미국 국방부가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요격미사일을 추가배치하고 괌에 미사일 방어(MD)체계를 서둘러 배치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고 무릎을 쳤다.
이런 파장을 감안할 때 저녁 무렵 정보당국과 국방부, 백악관까지 동시에 나서 진화에 나선 것은 당연해 보였다. DIA 평가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다는 당국자들의 발표에 의해 부인됐다.
한나절 소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를 지켜본 이의 뒷맛은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마치 무슨 시나리오가 가동되는 게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공교롭게 다음날 뉴욕타임스에는 미국이 위험제거를 위해 북한에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이 실렸다. 세계에서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선제공격 카드는 미국 내 강경한 흐름 중 하나다. DIA 보고서가 공개되기까지 과정을 따라가면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도 않다. 문제 내용이 공개되길 원한 듯한 정황이 보인다.
보고서 가운데 폭발력이 큰 이 문장만 기밀해제 돼 의원들에게 건네진 대목은 DIA가 공개해도 좋다는 꼬리표를 달아 정치권에 넘겼다고 의심할 수 있다. 단순 실수일 가능성마저 배제할 순 없겠지만,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서 내부 공개 승인이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한반도 긴장이라는 시점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미 정보당국의 북한 평가는 매년 수위가 높아졌다. 그런 연장선에 DIA의 북한 평가가 놓여 있다. 17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이 발간하는 ‘세계 위협평가’에서도 북한의 위험은 매년 상향 조정했다. 보고서는 2011년에는 “핵무기를 생산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럴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으나 이듬해 2012년에는 “핵무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 보고서는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의 진전을 이유로 북한을 “미국의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미국에 위협이 된다면 다음 단계는 선제적 조치의 필요성을 강화하는 것밖에 없다. 한 미국 내 인사는 “이런 흐름에서 DIA 보고서는 향후 조치를 위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기관들은 원래 직접 증거를 거론하지 않는다. 또 분석을 하면서 ‘예스’ ‘노’식으로 확실히 말하지도 않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이 그 피해자임을 고백한 적이 있다. 2003년 3월 기나긴 이라크전쟁을 시작했을 때 그는 정보기관들이 작성한 국가정보평가(NIE), 중앙정보국(CIA) 자료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보를 보다 철저히 검토하고 모든 가정을 재점검해야 했다며 이라크전의 실패가 정보의 실패였음을 자인했다. 거의 20년 만에 미국이 북한 이야기로 뒤덮여 있다. 이런 때 발생한 DIA 소동은 워싱턴의 게임법칙과, 북한 외교관의 차가운 대미관을 어색하게 오버랩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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