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의 '오픈 저널리즘'

[글로벌 리포트│영국] 황보연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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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보연 한겨레 기자  
 
아기돼지 삼형제의 집에서 늑대가 산 채로 끓는 물에 빠져 죽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다. 돼지들이 살인죄로 경찰에 체포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뜨겁게 달궈진다. 돼지의 벽돌집을 날려버리려다가 실패한 뒤 굴뚝으로 침입한 늑대를 죽인 것은 돼지들의 ‘정당방위’라는 의견과 그래도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때 한 시민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늑대가 천식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를 계기로 천식을 앓고 있던 늑대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돼지의 집을 날려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혹이 증폭된다. 결국 시뮬레이션을 거친 끝에 이번 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돼지들의 사기극이었음이 밝혀진다. 법정에서 돼지들이 유죄를 선고받지만 사건은 좀처럼 수습되지 않는다. 돼지들의 범행 동기가 모기지 대출로 집을 산 뒤 이를 갚지 못해 궁지에 몰린 탓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들의 공감대가 확산됐고 급기야 정부 금융정책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른다.

지난 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5년 만에 선보인 텔레비전 광고다. 이번 광고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오픈 저널리즘’(Open Journalism)이다. 실제로 이 광고에서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가디언’의 취재에다 각종 소셜 미디어와 독자들의 제보, 과학적 분석과 입증 등이 더해지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재해석됐다.

앨런 러스브릿저 ‘가디언’ 편집국장은 “기자들만 권위있고 전문적이며 흥미로운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한다. 자신들의 취재 인력만으로는 사건과 진실의 ‘전체적인 그림’(Whole Picture)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고백’이자 독자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구애’인 셈이다.

오픈 저널리즘을 대하는 ‘가디언’의 태도는 공격적이다.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뉴스리스트’(Newslist)의 공개가 대표적이다. ‘가디언’의 편집자들은 매일매일의 지면계획을 홈페이지에 올린다. 예고된 기사를 작성할 기자의 이름이 게시되기 때문에 만일 독자들이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갖고 있다면 곧바로 이를 전달할 수 있다. 독자들은 특정 기사가 어떻게 작성됐는지, 혹은 어떤 과정에서 누락되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엠바고가 걸려 있거나 단독 보도인 기사들은 예외다. 그럼에도 지면계획의 공개는 언론사로서는 파격적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다른 경쟁지와의 차별화에 실패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방’과 ‘소통’은 오프라인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지난 달 24~25일 가디언은 ‘오픈 위크엔드(Open Weekend)’라는 이름으로 편집국을 개방하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한 달 전에 이미 티켓은 동이 났고 5000명이 런던 킹스크로스역 인근의 가디언 본사를 찾았다. 일부 독자들은 가디언 편집팀이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밀착해서 볼 수 있었고, 또 다른 독자들은 “당신은 돈과 시간, 데이터 중에서 가디언에게 무엇을 줄거냐”는 다소 도발적 질문에 답해야 했다.

오픈 저널리즘으로 가디언이 얻은 성과는 뭘까. 지난해 8월 영국 사회를 강타한 폭동 사태의 원인과 배경을 두고 여론이 분분하자 가디언은 런던 정경대(LSE)와 수개월에 걸쳐 공동 조사를 벌였다. 무려 257만 건의 트윗에 대한 분석과 폭동에 가담했던 27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이를 통해 가디언은 폭동 사태의 한 복판에 범죄조직이 있다는 영국 총리의 주장과 달리 경찰에 대한 강한 불신과 반감이 주된 원인이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

2009년 영국 하원 의원들의 ‘활동비 스캔들’이 터졌을 때는 더 큰 재미를 봤다. 경쟁지가 당시 사건을 특종 보도하자 가디언은 의원들의 활동비 청구서 45만8832건을 일일이 스캔해 홈페이지에 올린 뒤 독자들에게 검증을 요청했다. 독자들의 참여는 폭발적이었고 22만5534건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일부 의원들이 4년간 벌인 파티 비용을 청구하는 영수증이 2000페이지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기사거리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종이 신문이 덜 팔리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가디언은 오픈 저널리즘을 도구로 삼아 온라인에서 빠른 속도로 독자들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영국 ABC 집계로, 가디언의 일평균 판매부수는 지난 1월 기준 22만9753부다. 딱 1년 전(27만9308부)에 견줘 17.7%가 줄었다. 반면에 가디언 홈페이지의 접속자 수는 하루 평균 404만7643명(올해 2월 기준)으로 한 해 전보다 무려 64.5%가 늘었다. 황보연 한겨레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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