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 때 옷깃 여미는 사람 못 봤다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엄민용의 우리말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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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민용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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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정말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 지난 23일 절기상으로 소설이었으니, 이제 겨울이 깊어졌다고 해야겠네요.
아무튼 즈음이면 신문이나 방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시민들이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따위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참 이상한 표현입니다. 추운 것과 옷깃을 여미는 일은 눈곱만큼의 연관도 없으니까요. ‘여미다’는 “옷깃 따위를 바로잡아 합쳐서 단정하게 하다”는 뜻의 말입니다. 즉 ‘여미다’는 흐트러진 차림을 반듯하게 매무시할 때 쓰는 말이지, 추위를 막을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옷깃을 여미고 순국선열에게 묵념하고 있다”라거나 “치맛자락을 여미고 다소곳이 앉은 아낙의 자태가 더없이 곱다”라고 해야 ‘여미다’를 제 쓰임에 맞게 사용한 것이지요. 추울 때는 옷깃을 세워야지, 여며서는 안 됩니다.
옷과 관련해 많이 틀리는 말에는 ‘소맷깃’도 있습니다. “철수가 소맷깃을 잡고 늘어졌다” “와이셔츠 소맷깃이 새카맣다” 등의 표현에서 보이는 ‘소맷깃’ 말입니다.
답부터 얘기하면 어느 옷에도 소맷깃은 없습니다. ‘소맷깃’은 “웃옷의 좌우에 있어 두 팔을 꿰는 부분”을 가리키는 ‘소매’에 ‘깃’이 더해지면서 사이시옷이 참가된 꼴이니, 아주 멀쩡한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로 ‘깃’ 때문인데요. ‘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이나 “양복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인 ‘옷깃’의 준말입니다.
다시 말해 ‘깃’은 ‘옷깃’의 준말이고, 옷깃은 웃옷의 맨 앞쪽과 위쪽에 달려 있을 뿐 소매 쪽에는 없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소맷깃’의 바른말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소맷귀’입니다. ‘소맷귀’는 ‘소매’에 ‘귀’가 더해진 말로, 여기서 ‘귀’는 얼굴에 붙은 귀가 아니라 “옷 따위에서 손을 집어넣게 만든 구멍” 또는 “두루마기와 저고리의 섶 끝이나 주머니의 양쪽 끝”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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