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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쏟아낸 열정과 우정
우리 가슴속에 담아두겠습니다”

조선일보 故홍석준 기자를 기리며

조선일보 정치부 주용중 차장2011.08.24 15:05:30


   
 
  ▲ 고(故) 홍석준 기자  
 
석준이를 고인(故人)이라 불러야 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석준아’라고 부르면 금방 대답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를 우도(牛盜)라 불렀습니다. 소도둑이란 뜻입니다. 돌이켜보니 고인이 훔친 것은 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마음을 훔쳤습니다.

우리는 어제와 그제, 여기에 모여서 고인과 함께한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경기지사 때인데 한번은 밤 12시가 넘어 홍석준씨가 취재한다고 공관으로 찾아왔어. 1시간 넘게 얘기하다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때 밖에서 제수씨가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야. 홍석준이에게 라이드를 해준 거지.” 고인과 술자리를 자주 했던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내가 석준이에게 그렇게 술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일찍 가버리나. 내 죄가 크다”며 밤늦도록 소주잔을 돌렸습니다.

고인은 21년6개월간의 기자생활 중 12년을 정치부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수많은 특종과 인터뷰는 정치권에 화제를 몰고왔습니다. 다른 언론사의 많은 후배들까지 그의 ‘싸나이’ 기질을 흠모해 형으로 모시고 따랐습니다. 고인은 기자생활을 체육부에서 열고 스포츠부에서 접었습니다. 석준이가 스포츠부장으로 일하는 동안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과 남아공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석준이는 스포츠에 과학을 접목해 새로운 스타일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후배들에게 늘 “새로운 기사를 쓰라.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2~3달에 한번씩 정기점진을 받으러 서울대병원에 들어갔을 때 병실에서도 기사 데스크를 봤습니다. 그렇게 꼼꼼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작년 여름 큰 수술을 받기 직전, 그는 편집국 간부에게 “스포츠부에 있는 누구누구는 다른 취재를 해보고 싶어하니 이번에 다른 부로 꼭 옮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병상에서도 그렇게 후배들을 챙겼습니다. 그 간부는 “석준이의 그 말이 유언처럼 돼버렸다”고 한탄했습니다.

작년 큰 수술이 끝나고 박은주 문화부장에겐 “눈 떠보니 성형이 잘 됐네”라는 농담섞인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박 부장은 그 문자를 지금도 휴대전화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 제가 병실로 찾아갔더니 “이제 젊어진 것 같다”고 좋아했습니다. 병이 다 나아서 ‘정치전문기자’ 홍석준이 다시 실력발휘를 하는 걸 보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석준이가 출근 준비를 하려 하면 조금 안 좋아지고, 다시 출근 준비를 할라치면 또 안 좋아지고 했답니다. 그는 그렇게 기사를 쓰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병마(病魔)가 석준이의 출근 길을 끝내 막았습니다.

어제, 그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석준이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기자로서는 까칠하고, 인간적으로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이는 “겉으로는 울퉁불퉁해 보여도 속정이 깊었다. 평생 남의 험담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석준이와 알콩달콩 살아온 부인은 울면서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갈 때가 되면 가야 하지만 석준이가 이렇게 일찍 가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싸나이’ 홍석준과 속정을 더 나누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인 일로 이리 바삐 간단 말입니까. 마지막 가는 길이 몹시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제대로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됩니다.

석준이의 몸은 이제 가더라도 석준이의 사랑과 석준이의 영혼은 생사(生死)를 넘어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가 쏟아냈던 기자로서의 열정과 우정은 고스란히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석준아, 부디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하나님의 마음도 훔치고, 부처님의 마음도 훔치는 대도(大盜)가 되기를 바란다.
고인이시여, 이제 모든 것을 훌훌 내려놓고 마음 편히 좋은 세상으로 가소서. 조선일보 식구들의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기원드립니다. <조선일보 정치부 주용중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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