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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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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MBC 사장이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더운 여름이 올 때까지, 여의도에 단풍이 들고 눈이 내려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노조 파업의 원인으로 꼽히는 황희만 부사장 임명을 거부했다.
하지만 사태 수습의 첫걸음을 황 부사장 임명 철회에서 찾아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TV제작본부 보직부장 12명이 사장 비판 성명을 실명으로 낸 데 이어 MBC 논설위원실장을 지낸 이우호 논설위원이 18일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황 부사장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우호 논설위원은 이날 새벽 2시22분 사내게시판에 ‘아직도, 꿈을 꿉니다’라는 글을 통해 “다른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혹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황희만 이사 부사장 임명과 그 이후의 해명은 구성원들에게 ‘조삼모사’로 느껴질 뿐”이라고 밝혔다.
이 논설위원은 “조삼모사의 고사에 나오는 그대로, 아침에 셋, 저녁에 넷, 하니 좋다고 키득거리는 원숭이와 우리가 뭐가 다른가, 하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취재와 제작 현장에서, 편집실과 스튜디오에서 밤샘 일을 하던 사원들의 자존심이 많이 망가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동조합과의 힘겨루기 문제가 아니다. 하루속히 사원들의 모멸감을 씻어주기를 바란다”며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가 신명나게 뛰고, 선배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은 회사를 살리고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는데 발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논설위원은 황희만 부사장, 신경민 선임기자, 최용익 논설위원 등과 함께 1981년 MBC에 입사한 원로 급 기자로 MBC에서 신망 받는 기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MBC 50일 파업’이 있었던 1992년 10월2일 MBC에 공권력이 투입돼 노조 집행부가 구속되고 수백명의 노조원이 연행된 이후 비대위 선전홍보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김재철 사장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 논설위원은 사천 시내 곳곳에 내걸린 김재철 사장 취임 축하 현수막을 지칭하며 “회사 남문 길에 노조의 깃발이 나부낄 때, 아름다운 남쪽 도시 사천시내에는 다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깃발은 천리 밖 서울 MBC 사원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경쟁에 따라 높은 자리에 오르고, 바깥과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맺고, 퇴직 후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순 없을 것”이라며 “그 외부 네트워크의 형성과 활용이 회사의 독립성과 조직 질서의 파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 전제를 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조소(嘲笑)를 짓는 현상도 있다는 사실, 그게 구성원들을 화나게, 혹은 슬프게 한다”고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걷잡을 수 없는 큰 충돌이 시작될 거란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며 “18년 전 그날,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전쟁터와 다름없던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팔자 사납기가 폴란드와 닮았다는, 넋 잃은 절규가 나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우호 논설위원의 “아직도, 꿈을 꿉니다”의 전문이다.
토해낼 수 없는 뭔가가 걸려있는 느낌입니다.
울렁거림을 참을 수 없어 손가락을 쑤셔 넣어도 올라오지 않는, 그 무엇의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내시경으로 들여다본다면 아마도 자괴나 모멸, 아니면 그 두 가지 덩어리가 뭉쳐져 있는 게 아닐까, 짐작만 할뿐입니다.
얼마 전 폴란드 대통령을 태운 항공기가 어이없는 추락 참사를 당했을 때,‘폴란드는 사람으로 치자면 팔자가 참 사나운 나라다.’그렇게 중얼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MBC란 회사도 사람으로 치자면, 참 팔자가 사나운 직장입니다.
그 팔자 사나운 직장에서 지난 30년 가까이, 보고 듣지 않아야 했던,
신산한 일들을 숱하게 겪었지만 그래도 제 깜냥과 품에 비하면 회사에 많은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입니다.
남문으로 출근하던 길, 문득 눈에 밟힌 깃발들이 메멘토가 되어 저를 잠시 18년 전으로 끌고 갑니다.
1992년 10월 그날, MBC는 마치 찢겨진 천안함의 선체처럼 처참한 몰골을 드러냈습니다.
일시에 난입한 수백 명 경찰들에게 허리띠와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던 동료들의 비명.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빚을 안고 저는 비대위 선전홍보부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경찰병력에 점령된 회사를 떠나 KBS 노조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눈치 밥 얻어먹으며 파업 특보 찍어내던 일, 여의도 집시가 되어 고수부지를 떠돌던 조합원들에게 막 찍어낸 특보 한 꾸러미씩을 나눠주던 일, (거리로 ‘배달 투쟁’에 나섰던 고마운 고참 조합원들 중에는 김재철 선배도 있었습니다.)
호프집에서 후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보이지 않는 전망과 싸우던 일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파업 50일. 초겨울로 접어들던 날 우리는‘반쪽보다는 조금 큰 승리'를 안고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MBC에 더 이상의 파업은 없기를 바랐고, 또 없을 줄 알았습니다.
회사 남문 길에 노조의 깃발이 나부낄 때, 아름다운 남쪽 도시 사천시내에는 다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이대 복국 집의 현수막이 왠지 인상적인데 무심히 보면 나쁘지 않은 의미의 시골스러움과 투박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복국집 주인이나 동창회 사람들의 '소박한' 생각과는 달리, 깃발은 천리 밖 서울 MBC 사원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줍니다.
높은 자리, 출세, 영달, 바깥의 힘, 그리고 독립성과 조직 질서의 파괴... 이런 말들을 무수히 들어왔습니다.
물론 제가 속한 보도 쪽에 국한될 것으로 여겨지는 부끄러운 얘기들입니다.
(여기서 5년 전 얘기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5년 2월 저는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불면증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어떤 권력이든 권력은 권력이다. 당시 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말리고 우려했던 그대로 ‘그때의 사장’선임과 그 과정 역시, 지금껏 MBC에게 지우기 힘든‘나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에 따라 높은 자리에 오르고, 바깥과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맺고, 퇴직 후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런데 모두가 훤히 아는 전제가 있습니다.‘바깥’과 연을 맺어 갖게 된‘자산’은 자연인이 아닌, MBC라는 공조직의 일원으로서 얻게 된 것이므로 개인의 영달이 아닌 회사의 이익으로 환원돼야 한다는 것,
그 외부 네트워크의 형성과 활용이 회사의 독립성과 조직 질서의 파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지극히 공자스런 얘기지만, 이런 전제를 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조소(嘲笑)를 짓는 현상도 있다는 사실, 그게 구성원들을 화나게, 혹은 슬프게 합니다.
심지어 누군가‘밖에 선을 대는 것도 일종의 능력’임을 암시하는 말을 대놓고 했다는 얘길 전해 들었습니다. 그에게 그것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지혜와 상식으로 통하는 듯합니다.
그의 솔직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를 탓하기보다 오랫동안 물려 내려온 조직의‘나쁜 유산’이 아닐까, 보는 게 맞는 판단일 듯싶습니다.
꿈을 꿉니다. 10층 대회의실에서 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사내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담보할 순 없지만 그래도 KT나 포스코 같은 위상이 방문진보다는 나을 거란 견해가
우세해졌습니다. 반론도 많아서 TF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회사 임원구조 얘기도 나왔습니다. “정치 외풍 때문에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무슨 삼성전자 임원처럼 연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몸조심이 제일, 일 벌이기가 두렵고 그저 자기 부문의 이익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임원회의 구조에서 무슨 생산적인 정책이 나오겠습니까?
임원은 사장과 부사장, 세 명 정도로 줄이고 다른 본부장들은 사원 신분을 유지하도록 해야 소신껏...”
그러자 옆 사람이 끼어들어 “본사 임원 숫자 줄이면 방문진 권한이 줄어드는데 방문진이 가만있을까요?” 웃음이 터졌지만 표정들이 금세 어두어 졌습니다.
다른 방에서는 수도권 지사 설치를 위해 세부 방안을 만드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인천과 경기도 인구 천5백만명을 커버하는데 보도국 기자 대여섯 명이 고작이라는 회사의 좀 늦은 각성에 따라 인천과 경기 남, 북부 세 군데에 지방 MBC 만한 큰 조직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기조실과 보도국, 라디오본부, 사업부 책임자들이 모였습니다. 수도권 프로 활성화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사업, 협찬 유치, 새로운 로컬 라디오 채널 추진 등이 논의됐습니다.
보도국 회의실에서는‘뉴스의 설득 기법에 관한 포럼’이 열렸습니다.
기사와 화면 구성, 어법의 설득력을 높여서 많은 시청자들이 무릎을 칠 수 있는,
비판을 당하는 힘센 사람들도‘할 말이 없다’는 반응을 끌어 낼 수 있는 다양한 설득 기법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시간, 김재철사장은 광고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김사장은 수도권 지사 설치를 촉진하기 위해 인천시장과 경기지사를 잇따라 만났습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그는 회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권력층을 상대로 중심을 잡으면서
‘허허실실’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그래도 요즘 드라마, 예능, 다큐, 모든 장르가 시청률 우위를 지키는데다 회사 분위기도 좋아졌음에 위안을 느낍니다.
이제, 김재철 선배께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다른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혹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황희만이사 부사장 임명과 그 이후의 해명은 구성원들에게‘조삼모사’로 느껴질 뿐입니다.
조삼모사의 고사에 나오는 그대로, 아침에 셋, 저녁에 넷, 하니 좋다고 키득거리는 원숭이와 우리가 뭐가 다른가, 하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취재와 제작 현장에서, 편집실과 스튜디오에서 밤샘 일을 하던 사원들의 자존심이 많이 망가졌을 겁니다.
노동조합과의 힘겨루기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속히 사원들의 모멸감을 씻어주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가 신명나게 뛰고, 선배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은 회사를 살리고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는데 발휘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월요일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큰 충돌이 시작될 거란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18년 전 그날,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전쟁터와 다름없던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팔자 사납기가 폴란드와 닮았다는, 넋 잃은 절규가 나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0년 4월 18일 논설위원실 이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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