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꼭 만 1년이 지났다는 한 기자가 종로 기자실에 2진으로 왔다. 지난해 이맘때 총선시민연대에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였다.
“연합뉴스 임화섭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나지막하고 수수한 목소리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총선연대 사무실에서 1진에게 팩트를 전화로 부르던 시기라 자주 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드물게 관악산 물리학도 출신이라는 점이 첫번째 흥미거리였다. “너 물리학도 낙제생이지”라고 놀리면 그냥 웃고만 지날 뿐이었다. 만날 때마다 발동하는 내 호기심에 종로 전입 두달만에 두손을 들고 영어로 고백했다. 그의 졸업 성적은 한마디로 ‘Very Good!’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 영어가 네이티브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영어가 젬병이어서 시샘 가득찬 눈길로 “연수 갔다왔냐”고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고등학교때 LA에 일주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했다.
그는 또 매번 조그만 손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궁금함을 못 참고 또 물어봤다. “넌 2진이 매일 목욕이나 하러 다니냐.” 목욕탕 가는 검정색 손가방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방 속에는 때수건, 치솔 대신 CD 플레이어가 들어있었다. 음악 마니아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피아노를 친 그는 95년 대학재학 시절부터 그후 공익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매월 ‘월간 객석’이라는 음악 전문잡지에 기고를 하는 수준이었다.
입사 후에도 그의 기고는 이어져 북한 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한 윤이상씨의 교향곡과 칸타타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한다.
기자실에는 영문 소포가 일주일에 두통 정도는 배달됐고 이 소포는 그가 해외 인터넷 음악사이트에서 신청한 CD 소포였다. 지금까지 모은 음악 CD는 5000여장 정도. 최근에는 영역을 넓혀 베를리오즈 음악콘서트, 오페라 ‘돈 지오반니’ 등의 DVD까지 구입하고 있다.
물리학을 공부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가 비전이 안보여 기자시험을 쳐봤다는 그의 이같은 재능이 화사하게 꽃필 시기를 기대해본다.
지정용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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