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미안함…"그래도 사랑해"

행복을 찾는 기자들 (3)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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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빠·엄마’ 혹은 ‘나쁜 남편·아내’ 소리를 자주 듣는 기자들.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시간을 자주 내줄 수 있는 직업도 아니다. “일을 하다보면 가족에게 신경을 쓰기 힘들다”고 기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도 기자이기 이전에 아빠·엄마였다. 비록 좋은 부모는 되지 못할지라도 시간을 쪼개 가족들을 위해 사는 모습이 애처롭고 또 아름다웠다. 기자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한달에 한번 영화보는 게 전부
이종현 경기일보 기자(18년차·주재기자)는 가족을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통상 오전 7시30분에 집을 나와 밤 10시나 되어서야 퇴근하는 일상 탓에 아이들 얼굴 볼 시간도 없다. 주말에도 회사 행사가 있으면 달려나가 취재를 해야 한다. 그럴 때면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아빠, 가지 마”라며 앞을 가로막고는 목젖이 빨갛게 운다. 한 달에 한번 네식구가 영화를 같이 보는 게 전부. “딜레마죠. 일하러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을 때가 많아요. 가족에게 올인하고 싶고 같이 있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고 많이 미안하죠.”

‘딸친엄’ 소리에 미안한 마음만
김수현 SBS 기자(17년차)도 초등학교 4학년과 여섯살 난 두 딸을 키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를 잊을 수 없다. 남편마저 해외출장 중인 그날 하필 야근이 걸린 것. 큰딸 은우는 있는대로 심통이 났고 결국 가족신문에 ‘올해의 5대 사건 : 은우가 크리스마스를 혼자 지낸 일’이라고 톱 제목을 뽑았다. “노는 날 출근하는 사람이 어딨어?”라며 다른 엄마들 같이 자기한테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지에 불만이 많다. “엄마는 ‘엄친아’ ‘엄친딸’ 얘기 안 하는데 너는 왜 자꾸 ‘딸친엄’(딸 친구 엄마) 얘기를 하니?”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하지만 천생 엄마인 김 기자의 블로그에는 귀여운 두 딸 이야기가 빼곡하다. “미안해, 하지만 너무너무 사랑해”의 다른 말이 아닐까.

기자들은 이렇게 가족 얘기를 꺼내자 안타까워했다. 직업상 시간을 낼 수 없어 애를 태우기도 하고 잦은 술자리와 야근에 가족을 볼 면목이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좋은 아빠·엄마가 아닌 것은 아니다. 피곤을 무릅쓰고 노력도 한다.

주말엔 가족과 함께 지내며 대화를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19년차·경제부)는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두 딸(서현·서하)의 아빠다. 지난해에는 ‘우리 아이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평일에는 아이들과 보내지 못해도 주말엔 꼭 아이들과 책도 읽고 어린이 영화도 보고, 운동도 같이 한다. 그러면서 가족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 장 기자는 “지금 같은 시점에서는 더구나 기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게 분명하다”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라도 아이들과 얘기하고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기 일에 열심인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들도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이해하고 또 훌륭한 기자가 되어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마지못해 일하고 끌려가듯 일하는 것보다 보람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부지런한 엄마 아빠 모습 자랑스러워해
김선희 YTN 앵커(16년차)도 이런 경우다. 김 앵커는 같은 회사 박희천 기자와 부부로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두 딸(수현·경현)을 키우고 있다. 시간을 내기 어려워 큰 딸 수현이가 학교 급식에 한번 와달라는 것도 미루다가 겨우 한번 참석했을 정도.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부모가 하는 일을 이해해주고 자랑스러워해요. 포털을 검색해 아빠가 쓴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엄마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고 좋아할 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죠.”

부끄럽지 않은 아빠 되기 위해 최선
류승훈 대전일보 기자(7년차·사회부)도 이제 두 살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빠를 낯선 사람으로 알아보고 울음부터 터뜨릴 때 제일 속상하다”는 류 기자는 영상통화가 되는 전화로 휴대폰을 바꾸는 등 자구책을 찾았지만 미안한 마음만 태산.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커서 아빠를 봤을 때 깨끗하게 일하셨구나, 남한테 창피하지 않게 사셨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좋은 아빠·엄마·남편·아내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족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중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일 테고, 또 양심적이고 훌륭한 기자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민왕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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