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비판 언론 분류 관리
인수위 은근한 압박에 문화부 과잉충성”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한 전문위원이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 조사를 지시한데 이어 문화관광부가 산하단체를 통해 신문사의 내부 동향 파악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시장 재편 구도에 발맞춰 언론통제 계획이 광범위하고 은밀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민·언론단체는 일련의 사건을 ‘언론탄압’, ‘정치사찰’로 규정하고 이경숙 인수위원장 사퇴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두 문건, 언론사 내부정보 담아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위 박광무 전문위원(문화관광부 파견·12일 위원 면직)은 지난 2일 문화부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언론사 주요 인사들에 대한 신상파악 자료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지난 3일 산하기관인 언론재단에 공문을 보내, ‘언론사 사장단과 편집국장, 정치부장, 문화부장’ 등에 대한 인적 사항과 성향을 표로 정리해 보고토록 했다.
조사 항목은 이들의 분야(직책), 성명, 생년, 최종학력(전공), 주요경력, 성향, 최근 활동, 연락처 등 8개였다. 조사대상에는 언론사 간부 외에 주요 단체장, 주요 광고주 업체 대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방송사 대표 등도 있었다. 인수위는 관련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개인적인 돌출행동”이라며 인수위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앞서 문화부는 지난달 24일 산하 단체인 신문발전위원회(신문위)에 요구해 ‘최근 신문산업 현황’이라는 보고서를 같은 달 28일 제출받았다.
조사 대상에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 등 중앙언론사 10곳이 포함됐다. 보고서에는 이들 신문사의 유가부수 추정치, 신문 구독에 따른 수입액과 광고 수입액, 지난해 당기순이익 등 일반적 경영내용과 함께 방송사업 진출 추진 등 장·단기 사업계획 및 부대사업 내용까지 상세히 기록됐다.
ㄱ·ㄴ 신문의 경우 차기 정부의 방송·신문 겸업 허용을 예상하고 케이블TV를 통한 우회 방송 시장 진출을 추진한다는 전략이 보고됐다. ㄷ신문의 경우 차기 사장 선임을 둘러싼 내부 인사들 사이의 경쟁 양상도 담았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신문산업 진흥을 위해 관련 법제·기금을 담당하는 문화부가 신문산업 지원책의 효율성 검토를 위한 일상적 업무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 잡아야겠다는 유혹 느낀다”인수위는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고, 관련성을 확인하는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의 경우 박 전 전문위원 개인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다만 확인된 것은 문화부가 두 사건에 공통적으로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문화부가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은 물론 신문사 내부 동향까지 조사한 것은 새 정부의 언론 정책에 주파수를 맞추기 위한, 시쳇말로 ‘알아서 기는’ 행위를 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탈규제와 시장주의를 내세우며 언론시장 재편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인수위가 신문법을 폐지하고 신문·방송의 겸영 제한을 풀겠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한나라당과 색깔을 같이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에 대한 특혜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겸영 허용에 따라 방송 진출이 가능한 신문사들은 현실적으로 이들밖에 없다. 이들의 방송 진출은 한나라당에 코드를 맞춰왔던 일부 보수신문의 기반을 튼튼히 해주면서 동시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MBC 등에 강력한 견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신문시장에 시장주의를 도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논리의 이면에는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과 정치적 지향점을 같이하는 특정신문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와 코드가 맞는 보수신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 강화는 역으로 비판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의도와 맥이 닿아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영호 대표는 “대개 권력을 잡으면 언론이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한다, 잡아야겠다는 유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고주를 조사토록 한 것이나 언론통제의 기초자료가 될 수도 있는 내부정보를 조사한 것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대선을 치르면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인 측근의 비판언론에 대한 반감은 커져 있는 게 사실이다. BBK 의혹 보도와 관련해 MBC를 민영화하겠다고 하고, 한겨레신문사 등을 항의 방문한 것은 이런 연장선에 있다. 이 당선인 스스로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부 언론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인수위에 출입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기자가 각각 한반도 대운하와 교육정책 관련 입장을 질문하자 이 당선인은 “일부 언론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전국언론노조 채수현 정책국장은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서 새 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내도록 하거나 최소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지 않도록 언론을 옥죄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며 “인수위 내부의 언론통제적 분위기가 문화부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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