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한나라당에 조언·분발 촉구
국민회의·민주당에는 비판 강도 높여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10월,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면제 의혹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인제 후보는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 독자 후보로 나선 상황이었다. 당마저 주류, 비주류로 나눠 정파 간 다툼이 심했다.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 날치기 이후 권력 누수현상에 시달렸다. 김대중 후보는 DJP연대를 추진하면서 유리한 위치에 오른 시기였다.
1997년 10월1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사설은 전날 열린 신한국당 전당대회를 다뤘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조선은 ‘이회창 신한국’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회창 총재는 과연 지금의 지리멸렬한 신한국당을 정권재창출의 강 건너까지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물은 뒤 “문제는 반 DJ 진영의 대표성을 얻느냐 잃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은 ‘이회창 신한국당의 책무’란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의 관심은 내분과 갈등으로 지리멸렬했던 신한국당이 과연 이후보 단일체제 아래서는 어떤 면모를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국민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노선과 색깔이 분명한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아 역시 사설 ‘이회창 총재의 새 기회’에서 “지금 이총재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무엇보다 당부터 추스르는 일”이라며 “새로운 이이체제가 당장 당내화합을 이루어낼 것이란 전망은 성급하나 양자간 협력과 명예총재로 추대된 김영삼 대통령의 조언이 힘을 합칠 경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고 썼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의 특별기고 ‘이회창호의 과제’를 통해서도 신한국당 이회창 체제의 재정비를 제언했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에서 앞서고 신한국당이 내분을 벌이고 있을 때 조선일보의 칼럼에서는 신한국당에 대한 조언이 잇따랐다. 조선 10월2일자 최청림(당시 논설주간) 칼럼에서는 “정권교체 세대교체를 불안하게 여겨온 보수안정 성향의 국민들은 요즘같은 집권여당의 정체성위기와 분열상에 대해 아연실색하고 있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민주주의와 자유경제체제를 수호하겠다는 계층과 지도그룹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행동할 때 총체적 혼미와 불확실성이 해소되고…”라고 썼다.
후보에 대한 비판도 특정 후보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10월 DJ의 92년 대선 비자금설이 나오자 철저한 검찰 수사를 요구했다. 당시 제기되던 신한국당의 자료 입수 경위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21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대선 이후로 수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하자, 조선은 사설 ‘놀라운 검찰의 선택’에서 맹비난했다. 다른 신문들은 수사 연기에 문제를 제기하기면서도 수사를 진행했을 경우 부작용도 인정하며, “대선 이후에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DJ 색깔론, 사상 비판
DJP연합 비판, 고영복 간첩 사건, 오익제 편지 사건, 양심수 논쟁 등 김대중 후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은 사설의 단골 주제였다.
신한국당과 이회창 총재에 대해서는 분발을 촉구하는 듯한 논조를 보였다. 10월23일 사설 ‘이회창의 자기 목소리’에서는 “신한국당원들은 여러 작은 이견과 불만을 접어두고 이제 본격적인 여야대결의 장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정당다운 태도다. 이총재도…야당과 본격적인 한판승부를 가르는데로 나아가야 한다”고 썼다.
조선을 대표하는 김대중, 류근일 칼럼은 좀더 분명하게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나타냈다.
류근일 당시 논설주간은 10월11일 칼럼에서 “DJ 비자금 폭로는 이회창을 반 DJ 진영의 대표주자로 끌어올리기 위한 안간힘은 될지 몰라도 신한국당 정권재창출의 확실보장책은 되기 어렵다”며 “반 DJ 진영의 분열이 DJ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썼다.
류 주간은 25일에 쓴 ‘신한국당의 갈림길’이라는 칼럼에서도 신한국당 주류와 비주류의 분쟁을 분석하며 누가 옳은지는 “유권자들이 내려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당시 주필(현 고문)은 10월18일 칼럼 ‘이회창의 선택’에서 비(非) DJ 진영의 단일화와 이회창 총재의 거취 문제를 주제삼아 “비자금 정치와 3김 정치를 공격하는 것이 그의 인기를 회복해줄 묘수”라고 썼다.
김대중·류근일 칼럼 편향 뚜렷
김대중 주필은 11월1일 칼럼 ‘3김으로 보낸 33년’에서 “나의 기자인생은 3김으로 인해 찌들고 퇴색하고 재미없어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IMF 사태가 닥치자 화두는 김대중 후보의 재협상론이 됐다. 최청림 논설실장은 12월11일 칼럼 ‘너무 많이 약속한다’에서 후보들이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한다며 김 후보의 IMF재협상론을 들었다. 12일자는 사설 ‘선거판 이래도 되나’도 같은 주제였다. 같은날 이회창 후보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 후보에게 IMF 재협상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투표 당일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인제 후보에 대한 비판을 다룬 ‘국민신당 무슨 집단인가?’였다. 대선이 김대중 이회창 양 강 구도로 전개된다고 보도한 데 대해 이인제 후보측이 물리적 항의를 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 사설은 “국민신당은 도대체 무슨 집단인가, 정치집단인가, 폭력집단인가”라고 썼다. 당시 선거 상황은 김대중 후보가 앞서고 이회창 후보가 근접하며, 이인제 후보가 이 후보의 표를 잠식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조선은 대선을 2개월 앞둔 10월20일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가 쓰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기 ‘내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매일 연재하기 시작했다. 선거일인 12월19일 즈음해서는 전기의 절정인 10·26사태가 다뤄졌다.
중앙일보는 논설위원들의 칼럼에서 김대중 후보에 대해 부정적이고, 이회창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중앙, ‘3김 시대 청산’ 의제로
권영빈 당시 논설위원(현 발행인)은 10월17일 칼럼 ‘적은 내부에 있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DJ 지지는 많아야 35% 선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남은 65%를 두 이씨와 조씨가 나눠선 누구도 35%를 넘을 수가 없다. 해답은 자명하다. 같은 뿌리의 여권 후보 두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연대하지 않고 서는 3김시대 청산은 허공에 치는 메아리일 뿐이다.”
10월24일 칼럼 ‘왜 3김시대 청산인가’에서는 “군사문화의 잔재는 3김 시대의 청산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창극 당시 논설위원(현 주필)은 10월23일 ‘여론조사에 춤추는 대선’에서 “신한국당이 지금같이 흔들리면 패배는 불을 보듯 확실하고 선거 후에는 해체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선거에서는 우리 국민과 정치의 한계로 자연인 세김씨를 청산하지 못하더라도 내용적으론 지역당·사당의 구태에 젖은 3김에 대한 제도적 청산은 이루는 것이다”라고 썼다.
조선, 2002년 대선도 편들기 나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12월19일 투표 당일 신문의 사설이 상징적이다.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는 투표 하루 전날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선거판세를 뒤엎은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깨진 데 대해 국민들이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희극적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급격한 상황 변화 앞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판단 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것이다.…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후보단일화 철회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젊은 정치인들의 공조는 이런식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대선을 주제로 두 개의 사설을 낸 중앙은 ‘2002 한국인의 이성적 선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번 선거는 3김시대 청산이라는 역사적 기대감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지역감정과 패거리정치, 그리고 친인척 비리로 점철됐던 3김식 정치시대를 마감하고 21세기형 새 정치를 열어야할 분기점에서 오늘의 선택은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사설 ‘잘못된 만남, 경박한 결별’에서 두 후보 간의 밀약설을 제기하며 “노후보와 정대표의 만남은 처음부터 유권자 기만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끝내 ‘한판의 쇼’로 끝나버린 후보단일화와 대선 공조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한 데 대해 그들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썼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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