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은 위험하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




  강준만 교수  
 
  ▲ 강준만 교수  
 
나는 과거 수많은 논쟁을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건 “몰입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깨닫기가 쉽지 않다. 몰입은 주로 성실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논쟁의 상대편에 대해 성실하다는 건 미덕이지만, 그건 논쟁이 관객을 전제로 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소홀히 여기게 만든다.



예컨대, 논쟁의 상대편이 진지성도 성실성도 갖추지 않은 채 내 주장에 대해 악의적이거나 편의적인 왜곡을 일삼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 왜곡은 교묘하다. 관객은 잘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몰입하는 나는 펄펄 뛰면서 흥분하기 마련이다. 관객은 흥분하는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논쟁에 임할 땐 적당히 불성실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정권의 대(對) 보수신문 관계를 볼 때마다 ‘몰입의 위험성’을 절감한다. 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자기들이 일은 잘 했는데 보수신문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바람에 지지도가 낮다고 주장한다. 이게 진짜 혹세무민하기 위해 나온 정략적인 거짓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노 정권 스스로 자신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정권 인사들 중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위로 올라갈수록 많다. 그래서 불행이다.



노 정권 인사들의 그런 주장은 타당한가? 나는 30%만 인정한다. 그것도 좀 다른 의미에서의 인정이다. 노 정권은 보수신문과의 싸움에 몰입하느라 스스로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보수신문에게도 원인 제공의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30%를 인정하는 것이다.



노 정권은 국민이 아니라 보수신문을 상대로 정치.행정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경제문제만 하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국민을 위로하면 좋겠는데, 보수신문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허풍이 자주 발생한다. 신뢰가 툭 떨어진다.



노 정권은 보수신문이라는 극단을 상대하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중간을 소홀히 한다. 흥미롭고도 놀라운 건 노 정권을 지지하는 논객들의 글도 노 정권을 비난하는 최악의 주장들을 격파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간에 있는 다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분노의 독설을 자주 구사한다. 마치 주요 인사가 되기 위해선 독설이 필수 항목인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상하다. 독설은 원래 제도적 권력을 갖지 못한 평론가들의 무기가 아닌가. 평론가들의 밥그릇을 빼앗겠다는 건가? 아니면 독설에 의한 카타르시스 정치를 구사해 보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골수 고정표의 지지를 다지는 데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중간에 있는 다수는 더욱 멀어질텐데, 권력자들이 평론가 행세를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노 정권의 보수신문에 대한 몰입이 낳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성찰’을 원천봉쇄한다는 점이다. 몰입은 상대편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져 상대편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사소하게 여기는 심리를 낳는다. 지지자들마저 그런 심리 상태에 빠져든다. 그래서 팔짱 끼고 구경하는 냉정한 관객의 수준을 폄하하고 원망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노 정권은 보수신문에 대해 불성실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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