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잘못된 갈등 구도와 언론의 책임
방송통신위원회가 8개월째 상임위원 2인 체제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위원 5명의 합의제 기구라는 방통위 설립 취지가 무색하다. 문제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다. 탄핵안 발의 뒤 사임한 이동관에서 김홍일로 위원장만 교체했을 뿐, 방통위 2인 체제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몫 상임위원 두 명이 모든 의사결정을 해도 되는데 굳이 야권 추천 위원을 임명해서 분란만 키울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법원조차 위법성을 지적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21대 국회가 다 끝나가는데 비정상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410 총선 결과는 대통
펜 기자와 인공지능 글쓰기
누군가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학생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라든지 연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때도 있다.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끔 직업에 관한 정체성을 고민할 때 더 뉴요커(The New Yorker) 저널리스트 애보트 조셉 리블링(Abbott Joseph Liebling)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글을 더 잘 쓰는 사람보다 더 빨리 쓸 수 있고, 더 빨리 쓰는 사람보다 더 잘 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력에 자
당신은 이번 선거에서 쓸 만한 질문을 던졌는가
선거가 끝났다. 선거를 앞두고 신문사나 방송사는 총선 보도를 위해 부서를 개편하고, 인력을 확충하며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회식을 하고 휴가도 보내준다. 언론인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선거 직후에 읽은 여러 칼럼 중 기후운동가 김현우 선생이 올린 모두 텃밭으로 가자라는 글이 와 닿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칼럼을 공유하며 당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코멘트가 마음에 들었다. 좋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은 밭을 원망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쉬운 이야기고. 어쨌든 총
드디어 총선 끝… 언론 제도 밑그림부터 새로 그려야
이제 확성기 소리는 끝났다. 하지만 정치권의 승패와 상관없이 언론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현직에서 적절한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바로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문제는 여야 모두에서 반복됐다. 비판 보도를 향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주장으로 맞서는 것도 낯익은 모습이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까지 총선 기간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며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번 선거방송심의위가 내린 결정들은 앞으로 법적 평가는 물론 끊임없이 공론장에 불려 나와 평가받을 것이다. 심의 과정에서 나온 위원들의 발언들도 마찬가지다. 비판을 무릅쓰고 그런 선거방송심의위를…
공천 파동과 언론의 책임
제22대 총선 뉴스에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는 아무래도 공천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의 875원 대파 발언 이전까지 양대 정당의 뉴스들은 온통 당내 주류와 비주류, 혹은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간의 공천 갈등으로 뒤덮였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둔 시기까지도 공천된 주요 인사들의 비위에 관한 보도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결국 공천이 선거 보도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검색어 공천이 들어간 기사가 2024년 3만2209건(4월1일 현재)에 달하고, 공약 2만1258건보다도 1만건…
'칼의 위협'을 감당해야 하는 시대
1988년 7월,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승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이 임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순간이었다. 그가 유신정권 및 제5공화국 아래 보여준 군사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가 문제가 되었다.정기승 전 대법관 지명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는데, 지명 한 달 전인 6월에 민주적인 사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소장법관들의 서명운동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민사지법의 법관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화 열기의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아무런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
언론, 판세분석을 멈춰라!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다가온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표정은 2년 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때와 유사하다. 이번에도 비호감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예견됐던 대로 엉망이다. 김건희 (여사님) 특검법 논란 이후 건생구팽 평가를 받는 국민의힘 공천 상황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자객공천, 비명횡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양당 모두 시스템 공천임을 강조했는데, 공천 결과를 보라! 이 정도면 그 시스템은 고장 난 게 틀림없다.국민의힘은 시스템을 통해 공천받은 도태우(대구 중남구), 정우택(충북 청주상당), 장
성평등 의제 확산을 위한 언론의 역할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 관련 보도가 있었다. 각종 행사와 성차별 철폐를 위한 여성 단체의 집회시위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가 가장 많았고,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대한 진단과 제언, 그리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진입한 이후 한 번도 꼴찌를 벗어난 적이 없는 유리천장 지수 등이 주요 보도 아이템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 권력 관계에 따른 여러 문제가 상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념일 혹은 특정 사회적 사건을 중심으로 관련 의제를 환기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아쉬운 점은 여전히 성평등 관련 의제가…
인스타그램 피드는 뉴스일까?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저녁 9시 뉴스 마지막 일기 예보가 끝나면 텔레비전을 끄고 주무셨다. 할아버지 옆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던 나에게 뉴스란 하루를 정리하고 저녁 시간에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뉴스를 보는 사람이 있겠지만, 오늘날 뉴스를 이용하는 방식은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작년 말 퓨리서치 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뉴스를 본다고 응답한 사람이 16%였다. 페이스북(30%)이나 유튜브(26%)에 비하면 낮은 비율이지만, 어떤 사람은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나 보는 서비스인데…
참을 수 없는 직관의 유혹과 직업의식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논란 끝에 경질되었다. 감독으로서의 자질은 실망스럽지만, 그는 여전히 위대한 축구선수다. 선수 시절부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클린스만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독일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해 잠비아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전반 시작 12분 만에 대여섯 명의 한국 수비수들이 페널티 박스에 포진해 있는데도 묘기에 가까운 멋진 터닝 발리슛을 작렬시켰다. 이것을 시작으로 독일은 전반에만 3골을 몰아넣었고, 그 중 2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