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공방 유감
지난 주 IT 쪽 최대 이슈는 미국 망중립성 폐기 소식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을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정보서비스)으로 재분류한 사건이다. 2015년 이후 미국에선 인터넷사업자에 대해 통신서비스에 준하는 의무를 부여해 왔다. 망을 오가는 콘텐츠에 대해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의무를 부과받았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 의무를 면하게 됐다. 대신 앞으론 연방거래위원회(FTC)를 통한 사후 규제를 받게 된다. 통신의 특수성을 감안한 망중립성이란 사전 규제 대신 시장의 보편적인 경쟁법의…
‘러빙 빈센트’, 95분짜리 그림을 만나다
지독한 편도선염으로 초겨울 몇 주를 꼼짝 못하고 지냈다. 누군가 온 몸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내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전염성은 없다지만 선약도 모두 취소한 채 집안에 박혀있으니 좀 낫는 듯 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도 콜록거리고 있는 건 순전히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하겠다.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릴까 전전긍긍하다가 기어이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고백하건데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영화를 보는 데에는 아낌없이 시간을 쓰고, 어떤 영화든 일단 보고 나서 자유롭게 감상평을 나누는
동인문학상 시상식장의 어떤 축사
문학 담당을 지낸 탓에, 알고 지내는 소설가가 좀 있다. 그 중 마흔여덟 동갑내기 A와는 말 놓고 지낸지도 20년 가까운 사이. 지난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수상자는 열 살 아래 김애란씨. 축사는 A의 몫이었다. 5시에 시작하는 시상식이었는데, 그는 몇 분 뒤에 쭈뼛거리며 지각 입장했다.축사 역시 특유의 머뭇거림으로 시작했는데, 세 가지 사례를 들었다. 처음 든 예가 시인 백석(1912~1996). 백석의 나이 마흔여덟 때의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주석님’께 충성을 바치는 시를 쓰지 않은 죄로, 이데
문재인 외교, 2단계 목표와 과제
지난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외교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혼란이 수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외교 공백이 시작하고, 외교 분야 사면초가 현상이 심각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북핵 문제는 지난 2년여 만에 처음으로 소강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 국면은 북한이 9월 중순 이후 도발을 유보한 것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현상인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도발과 맞대응의 악순환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한미 관계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재벌 성역’이 정말 무너지려면
재벌들이 비상이다. 비리혐의로 잇달아 수사를 받고 있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회삿돈 30억원을 자택 공사대금으로 유용한 혐의(배임)다. 김준기 전 동부 회장은 여비서 상습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뒤 경찰의 출석 요구에 계속 블응하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계열사 부당내부거래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자택과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일부에선 검경 수사권 분리를 노리는 경찰이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재벌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실제 한진과 동부는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찰이 정치적 계산을 하든 말든,
음모론적 굿판에 춤을 춘 한국 언론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다. 고유의 의제 설정(agenda-setting), 틀짓기(framing), 점화(priming) 기능 등을 통해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의제 설정은 언론의 본분이자 여론 형성 과정의 시발탄이다. 미디어는 의제 설정 기능 자체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 매체가 중요하게 다룬 이슈는 독자들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프레임은 상황이나 이슈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적 틀이다. 뉴스 프레임은 뉴스 소비자가 사회적 이슈나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 즉 ‘공중의 프레임’에 작용한
뉴스는 브랜드다
요즘 미국 젊은이들이 부쩍 뉴스에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들의 뉴스 유료 구독 비율이 부쩍 늘었다. ‘뉴요커’ 같은 잡지는 18~34세 구독자 수가 최근 1년 사이에 106% 증가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전통 매체들 역시 젊은층 유료 구독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젊은 구독자들이 올드미디어로 몰려가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전해준 소식이다. 이 기사에서 더 중요한 건 ‘왜?’란 질문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첫째, 트럼프 효과. 미국 미디어업계에선 트럼프
어떤 하루를 살 것인가
“딱 한 달만 살고 오려고.” 친구가 제주도로 떠났다. 학창시절부터 남달랐던 그녀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다. 하루 15시간, 햇빛도 보기 어렵다는 그 직장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모임에 나와서도 갈수록 말수가 줄고 시들시들 해지더니만 사표를 쓴 날, 제주 어느 바닷가에 빈 집을 빌려 살고 오겠다고 선포했다. ‘나도 여길 벗어나 산다면…’ 예능 프로그램 속 이효리 부부를 보면서 제주 생활을 동경하던 무렵이라, 친구의 실행력이 부러웠다. 옷가지와 책만 챙겨간 제주에서 활력을 되찾고 돌아온 그녀는 이제 이
2017년 노벨문학상에 대한 어떤 음모론
스웨덴 한림원은 왜 하필 가즈오 이시구로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을까.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 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가 공식 이유다. 하지만 커튼 뒤 비공식 이유를 들춘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 신문 지면에서 한림원의 이전 선택과 이번 선택을 비교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지난 2년간 노벨문학상이 과격한 선택으로 논란을 자초했으며, 이번 유턴을 환영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오늘은 기자도 커튼을 한 번 들춰보려 한다. 기자협회보는 ‘선수’들을 상대로 하는 매체니까
트럼프 대북 정책에 대한 혼선과 과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격화하면서 한반도 안보 위기설은 끊일 날이 없다. 이달 16일에 시작해 20일에 끝나는 한미 해상 연합 군사훈련이 예년에 비해 고강도로 진행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또 가열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을 압박 일변도로 전제하는 분석이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미국의 대북 군사 옵션에 대한 우려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간헐적으로 외교 해결 선호를 언급하지만, 이는 정책 혼선으로 규정될 뿐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