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미국 언론이 겪은 시행착오
언론사의 2021년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콘텐츠와 디지털이었다고 한다. 작년과 똑같다. 되돌이표 총론 속에서 한 발 나간 각론이 눈길을 잡았다. ‘구독 모델 뉴스 플랫폼 완성’. 딱 10년 전인 2011년의 미국 언론계를 떠올리게 하는 신년사 제목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국 레거시 언론사들의 운명은 2011년에 갈렸다. 그해 3월28일 뉴욕 타임스(NYT)는 페이월을 도입했다. 기사 20건까지는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읽으려면 월 15달러를 내야 하는 정책이었다. 소위 구멍이 숭숭 뚫린(porous) ‘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언론
2020년에도 수없이 많은 오보가 쏟아졌다. 주요 오보의 특징을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지난해 8월28일 조민,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일방적으로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는 제목의 기사를 초판 지면에 실었다가 삭제했다. 조선일보는 8월29일 정정보도문을 게재하고 취재경위를 밝혔다. 세브란스 관계자 등 4명과 식사자리에서 들은 얘기를 기사로 썼는데 정작 당사자는 취재하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은 오보를 낸 조선일보 기자들을 형사고소했다. 한겨레는 2019년 10월 ‘과거 윤석열 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
'내로남불'과 정치적 냉소주의
정신없이 살다보니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뉴스가 되는 때가 어느새 또 왔다. 교수신문이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라고 한다. 들어본 일 없는 말인데, ‘내로남불’을 한자식 표현으로 옮긴 신조어라는 해설이다.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내로남불’이란 말을 교수들도 어지간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내로남불’은 익숙하다. 권력이나 정치인의 이중잣대를 꼬집을 때 흔히 꺼내드는 개념이다. 특히 개혁 등 대의를 내세우는 정치에 대한 일침으로 많
꼭 다 써야 하는가
지난 7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저널(The Harvard Kennedy School Misinformation Review)에 “소셜 미디어 참여 지표 노출이 거짓 정보에 대한 취약성을 높인다”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 논문은 ‘코로나19’의 기원과 관련한 음모 이론성 내용이 소셜 미디어에서 어떻게 확산됐는지를 분석했다. 같은 거짓정보라도 참여 지표가 높으면 해당 내용의 이용 정도가 높아진다 등 여러 분석 결과 중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인 주류 매체가 다른 출처들에 비해 음모 이론성 내용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부분이었다. 연구
모든 욕은 같지 않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남의 고뿔보다 더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중심적 감정은 말이 주는 상처의 크기를 가늠하는데도 영향을 끼친다. 일례로, 다수의 시민들은 ‘흑인을 모방하기 위해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표현’에는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아시아인을 모방하기 위해 눈을 찢는 표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의 블랙 페이스 졸업사진이 문제가 된 직후 이뤄진 혐오표현 관련 일반시민 인식조사 결과다. 혐오표현의 의미를 알려면, 직관이 아니라 학습과 공감이 필요하다. 블랙페이스가 흑인비하와…
꾸미, 출입처 제도, 기자 갈아넣기
엎치락뒤치락하던 미국 대선 동안 오랜만에 CNN을 자주 들여다봤다. 뉴스 중간에 광고를 할 때마다 CNN의 자체 캐치프레이즈가 흘렀다. ‘사실이 먼저다(Facts First)’는 몇 년 전부터 보았던 구호지만, ‘그곳에 가라(Go There)’ 는 새로웠다. 뉴스가 벌어지는 ‘현장에 있겠다’는 다짐이었다. 현장을 지키는 데는 비용이 든다. ‘Go The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나는 지난 여름, 연구를 위해 만났던 한 국회 출입기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출입기자는 현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입처에서 현장은 오히려 실종되고
신문을 왜 보니?
지난 추석 방송인데, 아직도 간간이 회자된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탤런트 김광규씨가 아파트 문을 열고 신문을 집는 장면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종이신문”에 경악한다. 그 경악에 경악했다. 김광규는 “(노안 때문에) 눈이 너무 아프고”라고 변명한다. 종이신문은 ‘노안’ 온 사람들만 보는 건가.신문 칼럼에서 여러 기자들이 언급했다. 강준만 교수는 이 장면을 인용하며 종이신문을 변호했다.(한겨레 11월23일치, “설마 종이신문 보겠어?”) 앞서 한겨레 시민편집인 홍성수 교수도 칼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런 글은 슬프다.…
AI 들어오라고 하세요
개인적으로 스마트폰 뉴스 구독 경로는 크게 4가지다. 첫째,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링크를 걸어 공유하는 뉴스들을 많이 접한다. 자기 이름 걸고 추천하는 뉴스이니 보통 양질의 뉴스들이 올라온다. 다만 아쉬운 점은 ‘친구’들이 나와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이념이 비슷해서인지 ‘확증 편향’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구글. PC 화면은 안 그런데, 모바일 구글은 전면에 뉴스를 배치한다. 정확한 알고리즘은 모르겠으나, 경험상 구글은 내가 검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절반, 사람들이 많이 보는 뉴스 절반 정도를 노출하는…
디지털 경제와 뉴스 플랫폼
뉴스는 시장 상품으로서 태생적 결함을 안고 있다. “내용을 모른 채 값을 정하기 어렵고, 일단 내용을 알고 나면 돈 낼 이유가 사라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가 말한 이 ‘정보의 역설’ 탓이다. 뉴스 한 건마다의 정확한 값어치를 매기는 것도 난제지만, 같은 뉴스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는 제각각이다. 이 ‘값어치의 불확실성’은 전자의 경우 구독, 후자의 경우 번들링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됐다. 즉 뉴스 기사를 한 건씩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기사를 묶어 신문 한부에 담아(번들링) 정기 구독
김어준은 저널리스트다
예전 신문사에 다닐 때 선배가 저널리스트(언론인)와 기자의 직함 차이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답은 싱거웠다. 언론사에서 부장을 달면 언론인이고, 그 아래로는 기자라는 얘기였다. 기자 10년 정도 한 뒤 다른 직종으로 옮긴다면 ‘전직 기자’는 될 수 있어도 ‘전직 언론인’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딱히 동의하진 못했지만, 전문직으로서의 언론인에 대한 자부심은 인상적이었다.그렇다면 ‘한국의 유력 언론인’ 중 이 기준에 부합하는 언론인은 몇 명이나 될까.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