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공유의 가치

[이슈 인사이드 | 경제] 조미현 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조미현 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얼마 전 만난 보험 핀테크 대표는 직원들에게 “맥락(context)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종종 한다고 했다. 설립 8년차인 이 회사는 업계에서도 성장세가 가파른 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그가 맥락 공유를 강조하는 건 뛰어난 인재일수록 자신의 업무가 전체 비즈니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리더가 전제와 상황을 생략한 채 결괏값만 던져준다면 통제와 다름없다. 맥락을 충분히 공유받은 인재는 리더가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최적의 판단을 내린다. 맥락 공유는 인재가 재능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몰입의 전제 조건’이란 얘기였다.


이런 문화를 폭넓게 적용한 기업 중 하나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목표와 상황을 전달하는 소통 방식을 특히 강조한다.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책 <규칙 없음>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방향과 전제를 선명히 해 직원들이 스스로 최적의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예컨대 넷플릭스는 당시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고가 수준이던 460만 달러(약 70억원)에 달하는 ‘이카로스’를 두고도 내부 다큐팀에 판권 구매 결정을 맡겼다. 회사는 “크게 휘둘러라(swing big)”라는 전략적 목표만 제시했을 뿐이다. 결국 이카로스는 넷플릭스 최초로 장편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넷플릭스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맥락 공유의 가치는 정책이나 규제 시스템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규제 목적과 철학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만 나열되면, 규제는 공공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사전 통제 수단으로 기능한다. 특히 신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라는 포지티브 방식 규제는 그런 행정의 전형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세부 가이드라인을 촘촘히 늘려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다 보니 시장과 현장은 스스로 판단할 공간을 잃는다. 기업과 개인은 새로운 시도보다 ‘규정 준수’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이런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시행된 규제 샌드박스조차 단순 예외 허용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존 규제 때문에 어려운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하고, 시장에서 시험해 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는 사전 허가를 한 번 더 받아야 하는 관문에 가깝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자율성을 줬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질문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규제를 적용받는 시장 참여자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과거의 사고와 실패 경험은 규제 기관과 시장 모두를 통제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뢰는 통제 이후에 오는 결과가 아니라, 자율을 부여할 때 비로소 싹튼다. 더구나 한국의 시장과 기업 역량, 정보 공개 수준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기술과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모든 변수를 규정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공정 경쟁·안전이라는 큰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현장이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 공간을 넓히는 시도를 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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