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이 공포되며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에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가 법제화된 가운데 지역 언론에도 구속력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일 대전 우송대에서 열린 ‘무엇이 지역 언론의 입을 막는가?’ 토론회에선 임명동의제가 있다 하더라도 사측이 거부하면 마땅히 제재할 만한 후속조치가 없다며 법제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도원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언론노조 소속 지·본부 임명동의제 현황을 발표하며 상당수 언론사에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74개 지·본부 중 45곳(60.8%)이 임면·임명동의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구성원이 직접 보도책임자를 선출하는 직선제가 4곳(5.4%), 임명은 물론 해임 시에도 구성원 동의를 받도록 하는 임면동의제가 6곳(8.1%), 임명동의제가 35곳(47.3%)이었다.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는 언론사는 서울(14곳)보다 지역(31곳)이 더 많았고, 보도책임자 중간평가제도 60% 가까운 언론사가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김도원 민실위원장은 “임명동의제는 언론노조 소속 언론사만 실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며 “동아일보는 노사가 맺은 ‘편집권에 관한 협약’에 따라 편집국장 임명 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신임투표를 실시하며, 매일경제신문도 임명동의제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지에서도 제도를 마련해 운영한다는 것은 이 제도가 이른바 ‘강성노조’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주적 편집국 운영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2002년 5월부터 임명동의제를 실시하고 있는 경인일보도 해당 제도를 운영하며 실보다 득이 많음을 느꼈다고 밝혔다. 신지영 언론노조 경인일보지부장은 “2002년 이후 17명의 후보자가 임명동의제 투표를 거쳤고 임명 1년 뒤 시행하는 중간평가까지 합하면 모두 28번의 투표가 이뤄졌다”며 “제도 시행으로 노조, 편집국 조합원은 사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저널리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투표마다 민실위를 강화한다거나 취재 제반여건을 개선하는 등의 요구가 후보자에게 전달됐고, 2번의 선거를 거쳐야 하는 후보자로서는 이런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BS·YTN, 사측 거부로 중단… SBS도 사측 파기선언에 대상 축소
다만 토론회에선 임명동의제가 있다 하더라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제도 시행을 거부하면 마땅히 제재할 방도가 없다며 이를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웅 언론노조 MBC강원영동지부장은 “MBC의 경우 2019년 임명동의제를 포함한 단체협약을 노사가 체결했지만 일부에서는 회사가 단협을 무시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며 “광주MBC의 경우 보도국 구성원들이 1월 보도책임자에 대한 중간평가를 발의했지만 사측이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협을 거부하는 상황이 나와도 마땅히 제재할 만한 후속조치들이 없다는 게 허점”이라며 “전국MBC 17개 지부는 기존 단협을 보완한 개정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임명동의제 법제화 확대가 이뤄진다면 개정 작업이 더 탄력을 받지 않을까 판단한다. 지역방송사 입장에서는 임명동의제 법제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도원 민실위원장도 “사측이 시행을 거부할 경우 현행 제도에서 노조, 기자들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다”며 “편성규약으로 임명동의제를 규정한 KBS, 단협에서 임명동의제를 규정한 YTN의 경우 사측의 거부로 현재 제도 시행이 중단됐다. SBS도 보도본부장은 물론 사장까지도 임명동의 대상으로 삼는 강력한 단협을 갖고 있었으나 사측의 파기 선언으로 결국 사장은 동의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수단은 법제화일 것이나 그에 앞서 방송사의 경우 개정 방송법이 편성규약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점을 활용해 편성규약에 임명동의제를 포함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며 “신문법 역시 방송법에 준해 편집위원회 설치와 편집규약 제정을 의무화하고, 편집규약에 편집책임자의 민주적 임면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사측 또한 임명동의제를 경영권 침해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명동의제, 지역언론 구할 만능해법 아냐… 내부 개혁부터”
한편 토론회에선 임명동의제가 위기에 처한 지역 언론을 구할 만능 해법은 아니라며, 지역 언론이 내부 개혁부터 이뤄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영훈 언론노조 TBC지부장은 “생존 자체가 위기인 현실에서 프로그램 제작과 뉴스 보도의 기준은 결국 ‘돈이 되는가’로 귀결되고 있다”며 “지자체와 지역 기업은 ‘갑’의 위치에 있고, 협찬사·광고주를 위한 편성과 제작은 일상이 됐다. 지방 권력에서 언론사주, 언론사주에서 간부와 기자·PD로 이어지는 ‘원팀 구조’는 권력 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 위기와 미디어 다변화가 언론의 도덕 불감증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자기 성찰과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뼈를 깎는 내부 개혁과 철저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억압받지 않는 지역 언론은 요원한 얘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노조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의장인 김용훈 경남신문지부장도 “보도자료와 행사 기사 의존이 심화되면서 상대적으로 탐사보도나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는 보기가 힘들어졌다”며 “그러니 지역민들이 지역 신문을 재미 없어하고 결국 중앙 언론을 더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게 지금 지역 언론이 처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 밀착 콘텐츠를 확대하고 생활·청년·노동·재난 등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의제를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며 “수익도 다변화해야 한다. 더 이상 지자체 광고나 향토 기업의 홍보비에 기대지 말고 구독 회원제 모델을 도입한다든가 지역 데이터 서비스를 한다든가 지역 단체들과 결합해 보는 실험이 필요하다. 단기 실적주의를 넘어선 구조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