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브리핑 때 기자들이 질문하는 모습도 중계하기로 한 가운데 새로운 조치가 기자들에 대한 공격에 악용될 우려도 제기된다. 답변의 책임성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불편한 질문은 무례하다고 치부하는 인식을 먼저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대통령실은 브리핑룸 운영 방식을 개선한다며 카메라 4대를 새로 설치해 질문하는 기자를 중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브리핑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강유정 대변인은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을 예시로 들며 시대 흐름에 따른 국민적 요구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방식은 카메라 설치를 거쳐 이달 중순 이후 시행된다.
대통령실의 결정은 같은 내용을 요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 올라온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강유정 대변인님께 부탁이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작성자는 브리핑 때 기자의 얼굴이 보이게만 해주면 “그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썼다. 이른바 ‘기레기’의 신원을 뒤지는 수고를 줄여 달라는 것이다. 이 글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고 기자들에 대한 공격에 공감하는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강 대변인은 문제가 된 커뮤니티 게시글과 대통령실의 결정은 별개라고 해명했다. 강 대변인은 “투박하고 문제 있는 제안이었다. 어떻게 공격이라는 취지에 동의하겠느냐”며 “그럼에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의도와 투명성이라는 다른 취지를 개발해 현실로 만드는 게 바로 행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카메라 설치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도 8일 밤늦게 SNS에 “댓글을 통해 접한 제안이 의미 있다 판단해 실행에 옮겼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은 기자들에 대한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 듯 보인다. 답글에는 “기레기들 걸러내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며 “통쾌한 조치”, “징벌적손해배상 시급하다” 같은 호응이 달렸다.
새 조치는 비공식 질의응답인 ‘백브리핑’ 관례를 줄이고 대통령실 답변에 책임감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통령실 설명대로 백악관에서도 브리핑 때 기자의 질문 모습을 카메라로 비추며 이런 제도가 반드시 기자들에 대한 공격을 부르지는 않는다. 다만 불편한 질문을 꺼리거나 예의 없다고 여기는 국내에서는 운영 방식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신우열 전남대 교수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는 대변인과 기자가 치열하게 치고받고 논쟁한다”며 “권력에 비판적인 자체가 언론의 역할인데 언론과 적절한 긴장관계를 위해 불편한 질문을 뭉개지 말고 날 선 질문도 용인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중 대변인이 질문이 부적절하다며 면박을 주거나 무시한다면 지지자들에게 공격하라는 신호로 읽힌다는 것이다.
앞서 강 대변인은 5일 이완규, 함상훈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다고만 밝힌 뒤 “끝이다”라며 질문을 받지 않고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 지지자들은 강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다며 통쾌해하는 한편 한 남성 기자가 허탈해하며 “재밌어진다”고 혼잣말 하자 태도가 오만하다며 누구인지 찾으려 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대통령실이 앞으로 브리핑을 중계한다면 대변인과 기자, 시민 모두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기자회견에 성실히 임해야 하고, 기자들은 정권에 대한 도전이나 무례로 비칠까 걱정하며 꼬리 질문을 이어가지 않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또 시민은 질의응답이 다소 거칠게 보이더라도 언론의 본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3년 동안 미국 워싱턴 특파원 경험이 있는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 회장은 브리핑 제도 자체보다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기자들은 그동안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름과 소속을 밝혀 왔고 숨은 적도 없었다”며 “얼굴을 비추는 그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역 성과를 홍보하는 영상을 틀면서 자화자찬하니 조나단 칼 ABC 뉴스 기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따지고, 폴라 리드 CBS 기자가 구체적인 사망자 숫자를 대면서 대통령과 몇 분 넘게 언쟁을 벌인 장면이 기억 난다”며 “카메라가 기자를 비추면 언론이 공적 심문 기능을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