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가 지난 23일 KBS 차기 사장 후보인 이정옥 전 KBS 글로벌센터장, 김진수 KBS 해설국장, 양승동 현 KBS 사장을 차례로 만나 사장 출마 이유와 정책 비전, KBS 혁신 방안 등을 들었다. 후보자들은 오는 27일 170명 규모의 시민자문단 앞에서 정책발표회를 연다. KBS 이사회는 31일 후보자 면접(60%)과 시민자문단 평가(40%)를 반영해 최종 후보자 1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예정이다.
차기 사장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이정옥 전 KBS 글로벌센터장은 1979년 동양방송(TBC)에 입사했으나 이듬해 언론통폐합에 따라 KBS 소속이 된 후 지난 35년간 KBS에 재직하며 프랑스 파리 특파원 등을 거친 인물이다. 지난 2월 사장 선거에 출마해 당시에도 최종 3인에 들었던 이정옥 후보자는 현재 KBS의 경영 위기가 심각하다며 이를 타개하는 것이 첫째 목표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이정옥 후보자와의 일문일답.
-KBS 사장으로 재출마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시다시피 저는 KBS에서 35년, 방송에서 36년을 일했던 공영방송인이다. 그러나 제가 일했던 때는 제대로 언론의 자유를 누리거나 국민의 알 권리를 마음껏 취재하고 방송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있고 무엇인가 내가 일조를 하고 싶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 방송 환경이 정말 좋아졌고 제작 및 취재 자율성이 많이 열린 시점에서 KBS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저로서는 그런 마음에 재출마를 결심했다. 만약 사장이 된다면 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험을 살려 최선을 다할 것이고 KBS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할 것이다.”
-이번 정책발표회에서 중점을 둔 내용이 있다면.
“공영방송은 첫째로 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잘 해나가기 위해 재정이나 경영이 안정화돼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에게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KBS는 굉장한 위기 상황에 있다. 구성원들이 많은 시련을 겪고 투쟁을 하면서 지금의 자율성을 얻었지만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보기 힘들다.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뉴스 시청률도 많이 떨어졌다. KBS가 사실 2000년대부터 항상 15% 이상, 크게는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파업 상황 때보다 지금이 나아졌음에도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다. 가장 중요한 재정도 극도로 악화됐다. 최근 2년 동안 KBS가 흑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적자 추세다. KBS가 IMF 당시엔 580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2004년엔 638억원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8월까지 441억원 적자다. 물론 제작을 위해 쓰였다고는 하지만 연말까지 가면 1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KBS 역사상 그런 적자 규모는 한 번도 없었다. 제일 심했던 게 2004년이었다. 투쟁이나 명분에 몰입하다 보니 에너지를 다 소진해서 다른 채널들에 비해 경쟁력도 떨어지고 효율적인 경영에도 신경을 잘 못 썼던 것 같다. 사실 사장은 경영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 수장은 제작현장 경험뿐만 아니라 전체를 보고 경영을 효율화해야 한다. 저 같은 경우 기자로 일해 왔지만 부장이 되면서부터 뉴미디어본부라든가 국제협력주간, 글로벌센터장, 방송협회 사무총장 등등 회사 안과 밖에서 근무하면서 전체를 볼 수 있었고 지상파 및 공영방송의 위상을 알게 됐다. 또 경영 마인드도 생겼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지는 않다. 만약 그러한 경험이나 생각들이 지금 위기에 빠진 KBS를 일으켜 세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는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누가 앉아서 TV를 보나.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본다. 때문에 지상파가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다. 광고도 10년 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모바일 광고는 몇 년 만에 수천 배가 됐다. 바뀐 환경에 빨리 적응을 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럼으로써 자율성을 쟁취했다면 지금 현실적으로 필요한 건 경영의 정상화다. 그래야 국민 앞에 떳떳이 얘기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재원은 수신료와 광고다.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국민 앞에 책임 있는 경영을 해야 한다. 시청자가 가장 중요하다. 시청자와 소통을 넓히고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론조사 등을 통해 계속 알고 있어야 한다.”
-말씀하셨듯 미디어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적절한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KBS의 현재 혁신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모바일 시대, 디지털 융합시대를 맞으며 플랫폼이 다양화됐다. 모바일 퍼스트를 사실 빨리 했어야 했다. 모바일 콘텐츠와 기존 방송 콘텐츠가 반반 정도 되면 좋은데 알다시피 그렇지 못하다. 아예 처음에 프로그램을 만들 때부터 모바일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식으로 모바일 퍼스트를 이뤄야 한다. 전 직원이 모바일이 중요하니 모바일 퍼스트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데 아직 ‘KBS니까 보겠지’ 하는 과거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마인드를 빨리 변화해야 한다. 게다가 최근엔 유료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들이 많아졌다. 옛날엔 뉴스를 KBS를 통해 봤지만 지금은 개인 미디어가 활성화돼 있다. 그런 것들을 올해 말부터 빨리 준비해야겠다. 근데 그걸 한다고 금방 수익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지금 적자 상황은 물이 새고 있는 굉장한 위기이기 때문에 당장 막는 게 중요하다. 비상경영체제로 들어가 위기관리TF 등을 만들어 제작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제작비가 지금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올해 1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적자를 막을 수 있다. 일각에선 수신료 인상 얘기도 하지만 그건 금방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 의지할 수 없고 오히려 저는 묘안으로 생각한 게 수신료 누락분으로 수익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큰 영업장들 대상으로 수신료 누락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발부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다. 광고 같은 경우에도 예를 들어 KBS월드 광고를 활용할 수 있다. KBS월드가 동남아에서 영향력이 큰데 그에 비해 광고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 글로벌 광고행사와 연계해서 해외 광고를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하고 있다.”
-뉴스룸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지금 보도본부 조직이 기자들이 부서출입을 하게 돼 있다. 낮에 취재하고 돌아와서 오후부터는 뉴스 제작을 하는 시스템인데 제작하는 동안은 취재를 할 수 없다. 때문에 취재와 제작을 분리해서 취재하는 기자는 열심히 취재만 하고 계속 콘텐츠를 확보해서 심층 취재 기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돼야 한다. 또 제작은 시니어 기자들이 맡아서 현장 영상을 편집하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예쁘게 꾸며서 내보내 준다면 취재기자들이 마음껏 심층취재를 할 수 있고 뉴스 콘텐츠의 깊이도 깊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에도 심층 콘텐츠를 내보낼 수 있고 KBS 뉴스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KBS는 지난 4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정상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7개월간의 작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구성원들의 투쟁으로 과거의 권위적인 분위기에서의 탈피와 제작 자율성 등이 이뤄졌다고 본다. 다만 아까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KBS 시청률은 양 사장 취임 전인 1~3월보다 4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떨어졌다. 자율성은 이뤘지만 반성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현재 KBS가 공정하고 신뢰 있는 방송인지, 또 객관적으로 경영 상황은 어떤지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적폐 청산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나.
“과거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반성하는 건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시는 되풀이되면 안 된다. 적폐 청산 작업은 철저하게 하고 반성하고 가야 한다. 다만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고 국제무대에서 한류도 많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라든지 국제 사회에서의 KBS의 역할이 있다. 지금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적폐 청산이나 재정 문제 등 내부의 위기 때문에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화 이후에 어떤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KBS 프로그램이라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뛰어나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국제상도 정말 많이 받았는데 그 DNA가 KBS에 있다. 지금 그 시너지를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신이 나서 새 프로그램을 만들고 신이 나서 취재할 수 있는 그런 KBS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다.”
-최근 성평등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어떻게 평가하나.
“저도 지난번 사장 선거 과정에서 젠더센터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적이 있다. 성평등센터가 만들어진 건 환영할 일이다. 다만 만드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세심하게 운영을 해야 한다. 개인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사생활 보호를 철저히 해야 한다. 또 지금도 징계라든가 양형을 정할 때 위원들이 다 남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위원회는 한 성이 60%를 넘으면 안 된다. 여성의 조직 내 승진 문제도 아쉽다. 저희 땐 말할 것도 없고 현재도 KBS 국장급 이상 60여명 중에 여성이 3명이다. 그래서 사실 여성 직급 쿼터제를 실시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제도가 시행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여성이 어느 정도는 자리를 잡을 수 있고 나중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효과가 있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KBS라는 배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조직과 재정의 안정이 필요하다. 조직과 재정의 안정이 따라줘야 외부에서 신뢰를 한다. 그래야 좋은 콘텐츠가 나온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다. 과거 공정성이라든가 외부의 개입 문제로 고민을 했던 때에 비하면 그렇다. 제 가족사를 돌아보면 초대 기자협회장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특종 보도하면서 4·19 혁명을 촉발시켰는데 당시 정권이 보도하지 말라고 금전적으로 유혹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물리쳤고 어려운 시대 기자로서 강직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셨다. 제 동생도, 외삼촌도 5공화국 어려운 시대에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많은 고민과 투쟁을 했다. 외삼촌인 이현재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신영복 교수의 은사였는데 ‘내 제자는 공산당이 아니다’고 목숨을 걸고 증언해 신영복 교수의 사형선고가 무기징역으로 바뀌기도 했다. 저도 사실상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시절을 겪었고 제 방송 생활 역시 5공화국 시절에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양심의 가책도 많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부끄러움과 소명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후배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