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후원제 도입… 국내 기성언론 첫 시도

[17일 '한겨레 서포터즈 벗' 출범]
회원가입 전제로 한 '후원회원제'
주식후원 방식도 함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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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5월 중순 후원제를 도입한다. 오프라인 매체 광고에 기반한 수익모델의 무게추를 디지털, 독자·이용자 기반으로 옮기기 위한 첫발을 뗀다. 지난 몇 년 간 언론계에선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잇따랐지만 종합매체이자 레거시미디어가 전사적으로 나서 수익모델의 대안을 찾고 실제 실행까지 한 사례는 드물었다. 언론 산업 위기 가운데 나온 한겨레의 시도가 언론계에 유의미한 행보로 남을지 이목이 쏠린다.

(관련기사 : "우리 가치를 지지해달라" 후원제 실험… 언론사 숨통 틀 대안될까)

 

일려스트=한겨레 홈페이지 캡처


한겨레는 창간기념일 즈음인 오는 5월17일 ‘한겨레 서포터즈 벗’ 또는 ‘한겨레 후원 회원제 벗’ 명칭의 후원제를 시작한다. 앞서 한겨레는 2017년 기사에 자발적으로 후원을 하는 ‘기사 후원제’(2017년) 시행, 주간지 한겨레21의 후원제 운영(2019년) 경험이 있지만 이번엔 콘텐츠가 아닌 매체, 종합일간지 차원의 도입이다.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는 최근 임직원에 5월 중순 후원제 도입 소식을 전한 이메일에서 “이제 ‘국민주 신문 한겨레’가 ‘디지털 후원언론 한겨레’로 거듭 태어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며 “한겨레를 신뢰하는 독자들을 디지털 언론시대 ‘한겨레 서포터즈 벗’으로 소중하게 모시는 일”이라 밝혔다.

디지털 뉴스에 비용지불 요구하되, 매체의 가치 지지를 부탁하는 방식

후원제는 정기후원, 일시후원, 주식후원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기후원은 ‘월 최소 1만원 이상 1만원 단위’, 일시후원은 ‘최소 5000원 이상 1천원 단위’, 주식후원은 ‘최소 50주(액면가 25만원) 이상 10주 단위’로 후원토록 한다. 통상 후원금이 법적으로 기부금이 돼 제약이 따르는 만큼 회원 가입을 전제로 한 ‘후원회원제’가 근간이다. 특히 세계 유일의 ‘국민주’ 언론사로서 주식후원과 결합했다는 특징이 있다. 류이근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은 “2014~2015년 자본잠식 상태에서 임직원들이 퇴직금을 출자전환하며 회사에 쌓인 자사주를 일정 한도 내 공모하되 특정 주주의 과점을 막기 위해 1% 한도 내에서 구매할 수 있게 했다”며 “한겨레의 역사는 후원의 역사인 만큼 상징적인 측면에서 주식후원을 열어뒀지만 주주를 후원자로 더 적극 전환시킨다기보다는 정기후원자 확대가 주된 목적이자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후원그룹 구성도.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사 후원모델 연구'(33페이지)에서 캡처.

목표는 “디지털상 새 독자 확대”다. 독자 기반 매출이 광고에 버금가도록 하는 것이다. 디지털 뉴스에 비용지불을 요구하되 거래가 아닌 매체의 가치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방식이다. 이에 매체의 지향과 가치를 담은 후원배너도 홈페이지 곳곳에 배치된다. 대신 후원회원은 한겨레 사이트 로그인 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특정 기자·이슈·연재물 구독 서비스, 후원내역 등을 마이페이지에서 확인·관리할 수 있다. 향후 후원회원에 한해 ‘광고 없는 페이지’도 제공할 계획이다. 후원에 대한 보상 체계도 존재한다. 기본 틀은 “동등한 수준의 리워드를 주되 후원의 빈도(횟수)와 강도(금액), 기간에 따라 차이를 두는” 식이다. 특히 멤버십 관리 및 소통을 전담하는 부서, 미디어전략실 내 후원미디어전략부(6명)가 생겼고, 리워드 체계에 ‘뉴스룸과 독자 간 관계와 소통’이 고려돼 포함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류 실장은 “기부단체에 기부를 중단하는 이유에 대한 서베이에서 ‘감사할 줄 모른다’는 말이 있었는데 물성이 있는 걸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후원받은 쪽에서 알아주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며 “후원자들과 관계를 끈끈하게 디지털로 연결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 한다. 후원제를 해온 국내 매체에서 하고 있지 않은 방식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나고 싶거나 특별한 이슈를 취재한 기자와 소통하는 부분 등 뉴스룸을 오픈하는 부분도 리워드 체계 안에 들어 있다. 편집국과 협의 해 더 구체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의 후원제는 기성 언론의 ‘디지털 수익모델’이자 ‘독자 기반 수익모델’ 개척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영미권 언론에서 ‘유료구독(페이월)’와 ‘후원제’의 두 축이 새 수익모델로 조명된 반면 포털을 통한 공짜뉴스 소비로 국내 언론은 엄밀한 의미의 ‘디지털 독자’를 갖지 못해왔다. ‘100만 후원자’를 확보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 역시 흑자를 내는 데 수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당장 한겨레의 성패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홈페이지에 후원 배너도 배치 예정... 후원자엔 ‘광고없는 페이지’ 계획

‘디지털 후원’이 기존 ‘광고’와 ‘신문구독’을 통한 수익을 깎아먹는 방식이 아닌 만큼 추가 수입이 될 소지는 크다. 참고로 지난 2019년 3월 후원제를 도입한 한겨레21이 첫해 모은 후원금은 7414만원이었다. 단, 후원제로 국내외에서 유의미한 사례가 되는 매체들이 탐사보도나 기후전문보도 등 특정 영역에 특화됐거나 매우 높은 저널리즘 수준으로 신뢰를 받는 곳인 만큼 이 같은 시도가 국내에서 확장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한겨레는 후원제에 단기간 비약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장기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 이번‘후원회원제’가 버전 ‘1.0’이라면 ‘2.0’ (이용자 분석 시스템 고도화 및 디지털 서비스 강화), ‘3.0’(콘텐츠 유료화와 결합) 등이 청사진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발간한 연구서 ‘언론사 후원모델 연구’(양정애, 최지향, 권태호)에 따르면 ‘한 달에 1만원을 내는 후원회원 5만명 확보가 1차 목표’, ‘10만명이 최종 목표’다. 이를 위해선 디지털 인프라 구축 및 고도화, 기술역량 전반의 증진 등 과제가 남는다.


다만 결국 핵심은 ‘콘텐츠 품질 향상’이다. 언론사 후원 근간엔 언론사 상품인 ‘뉴스’에 대한 신뢰가 골자이기 때문이다. 임석규 한겨레 편집국장은 “신문과 디지털 분리 제작, 뉴스레터 출범, 저널리즘 책무실 신설 등 취임 이래 여러 일들이 후원제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가게 오픈 하듯 콘텐츠를 한 번에 바꾸긴 어렵다”며 “가디언도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독자와 대중의 신뢰 없이 후원제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두고 신뢰받는 콘텐츠를 위해 뉴스룸을 계속 업데이트 하는 과정을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수십 년 취재관행을 어떻게 바꿔 새 독자들 요구에 부응할 취재 시스템을 만들지가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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