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의원님들
21대 국회의 전체 의안 가결률은 29.6%에 그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수치는 공직자의 재산신고 의무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가결률이다.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15일 기준으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57건 중 고작 3건(5.3%)만이 국회에서 가결됐다.시민단체와 언론 그리고 학계에서는 그간 줄기차게 공직자윤리법의 구멍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생각보다 개정 법률안의 통과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가결될 만큼 법률안의 수준이 낮아서일까
건설노조 보도는 저널리즘의 임무를 해내고 있는가
누군가 좋은 질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고민하다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첫째, 반대편을 실제로 아프게 하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상대에게 1도 타격감이 없는 질문은 대체로, 상대방을 단순히 사악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멍청한 존재로 상정한다. 이러면 사실 질문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애초에 궁금한 게 없을 테니까.둘째,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질문도 좋은 질문이 아니지만, 반대편만 아프게 하는 질문도 좋은 질문은 아니다. 우리편도 불편한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어떤 문제가 오래 해결되지 않고 심지어 격렬한 갈등을 수반하고 있다
여성 기자에 더 많은 운동장을
나는 내가 공 차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어제 연습경기 이후 땀내 나는 상태로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슈팅 연습을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네 어쩌네 얘기하면서 알게 됐다. 어, 나 공 차는 거 좋아하네? 그냥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서 싫었던 것일 뿐. 12개 팀 여기자님들 다 다치지 마시고 무사히 끝냅시다. (김남영 중앙일보 풋살팀 주장 페이스북)요즘 소셜미디어에서 여성기자들이 초록빛 인조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곧잘 눈에 띈다. 6일 열리는 제1회 한국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를 준비하는 이들이 올리는 훈련 사진들이다
산림청의 아전인수식 보도자료
임도(林道) 있어야 산불 막는다, 임도만 있었어도, 최전방 소방수 임도지난달 15일 산림청이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10배 가까이 산불진화임도를 늘릴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언론이 쏟아낸 기사 제목들이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지난달 8일 경남 합천, 같은달 11일 경남 하동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각각 발생한 산불을 비교하면서 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산림청이 임도 설치를 강변한 근거는 합천 산불은 임도가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하면서 신속한 진화가 가능했던 반면, 지리산국립공원
'삼성전자 쏠림'의 명암
한국은행 조사국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 브레인 집단이다. 100여명이 몸담은 조사국의 20%가량은 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 석박사 출신이다. 조사국 보고서는 통화정책을 비롯한 여러 경제정책의 근거로 활용된다.요즘 한은 조사국은 삼성전자 분석 역량 높이기에 몰두하고 있다. 관련 보고서데이터를 수집하고 관계자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반도체 업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삼성전자와 비공식으로 접촉했다는 이야기도 돈다.주요 경제부처들도 삼성전자를 핵심 변수로 놓고 정책을 설계한다. 삼성전자 등의 고용설비투자를 북돋는 정
역사의 공백 채워줄 종가의 문헌들
만약 예전처럼 민간의 곳간을 가혹하게 침탈해 소란스럽게 하는 자가 있다면, 경이 적발하여 보고하도록 하라.임진왜란이 벌어지던 1593년 3월17일, 선조가 도체찰사(都體察使조선시대 전시 최고 군직)였던 서애 류성룡(1542~1607)에게 내린 유지(有旨)에 남긴 기록이다. 군사들은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전장에서 도망치고, 백성들은 곡식을 거둬간다는 이유로 원통함을 호소하던 상황. 선조는 이 유지에서 조정의 본의는 본래 이와 같지 않다며 근래 관원들이 이러한 조정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낱알 한 톨까지 가혹하게 거둬들여 여론이 들끓게…
헝그리 정신은 없다
한 단체를 통해 매달 저소득층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아이는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야구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많이 미안해한다.요즘 야구는 비싼 운동이다. 고교 2학년 야구부 학부모 얘기를 들어보자.학교에 월례비(감독, 코치 임금)로 내는 돈이 90만원이다. 식대 40만원(한 달 기준)도 따로 낸다. 야구 아카데미에서 과외를 받는데 10번에 150만원 정도 든다. 부상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마사지 등 몸 관리도 받는데 한 번 갈 때마다 10만
쿼드와 한반도의 미래
한국 정부는 쿼드 실무그룹 참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쿼드는 미국이 일본, 호주, 인도를 끌어들인 중국 견제를 위한 4개국 협의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 쿼드 실무그룹 참여를 거쳐 정식 가입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니 실무그룹 참여는 쿼드 가입을 위한 사전 단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 내 일각에선 한국을 포함해 쿼드를 5개 국가가 참여하는 퀸텟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미국이 주도하지만 쿼드의 산파는 일본의 아베 전 총리다. 2007년 인도 의회에서 그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개념과 쿼드의…
공개해야 할 이유와 하지 않을 이유 사이
저에겐 매년 3월 말이면 돌아오는 연례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개하는 고위공직자 재산 PDF(Portable Document Format)를 엑셀 형태로 변환하는 지루한 작업입니다. 해마다 공개하는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는 1993년 2월27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직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본인의 재산 내역을 공개함으로써 뿌리를 내리게 됐습니다. 올해로 벌써 30년째입니다.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예방을 목적으로 시행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는 언론의 공직감시(watch dog) 수행에 유
'다음 소희'가 없으려면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전북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3학년생이 목숨을 끊은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소희가 죽음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많이 울었다. 그런데 형사 유진이 해당 사건을 추적하며 학교, 기업, 교육청을 응징하는 후반부는 다소 불편하게 다가왔다. 영화의 문제의식이 아이들을 그런 곳에 보내면 안 되는 것 아닌가에서 멈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현장실습생 죽음을 보도하는 대다수 언론의 시각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아이들을 위험 사업장에 보내선 안 되며, 법과 제도가 지켜져야 한다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 나 애 낳을까? 정자는?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대뜸 보낸 메시지에 온갖 잔소리를 덧붙일 만도 한데, 쿨하다 못해 실용적인 엄마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엄마는 결혼하란 말 대신 비혼 출산한 방송인 허수경, 사유리의 기사를 공유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자 구하는 법을 대신 알아봐 줬다. 역시 페미니스트 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갑자기 출산이 궁금해진 까닭에는, 뜻밖에도 여러 페미니스트들과 나눈 수다가 자리하고 있다. 필경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치열하게 버티는 중일 정치인, 사업가, 언론인 등 선배 여성들이 입을 모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
2015년 4월 중순, 아직 눈이 덮여있는 설악산에 오른 적이 있다. 1박 2일에 걸쳐 강원 양양군 오색리~설악산 끝청봉 사이를 오르내린 당시 산행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예정지가 어떤 지역인지 직접 살펴보기 위한 취지였다. 등산로도 없고, 지형도 험준한 사업 예정지를 기다시피 올랐던 설악산에서 기자는 환경영향평가서나 보도자료 뒤에 숨어있는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당시 찾아낸 첫 번째 이유는 안전성 문제였다. 기자가 지상에서 경험한 초속 19~20m에 이르는 강풍은 성인 남성이 뒤로 밀려나는…
'오너 리스크' 유감
SM엔터테인먼트는 2019년부터 주주들과 다퉜다. 이 회사 최대 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 개인회사인 라이크 기획이 충돌 배경이었다. SM은 라이크기획에 음반의 자문프로듀싱 수수료 형태로 총 1600억원을 지급했다.하지만 자문프로듀싱 대가로는 과도하단 전문가와 투자자들의 지적이 많았다. 이 전 총괄이 대주주 지위를 악용해 회사 현금을 빼가고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대주주의 편법행위 의혹이 불거지자 SM은 행동주의펀드의 표적이 됐다. 행동주의펀드는 투자한 기업에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 권
유물의 뒷모습
6일 기자가 찾은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지난해 12월 재개관하며 총 70점의 유물을 선보인 불교조각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국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다.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은은한 회색빛이 감싼 전시장 중앙에 177㎝ 높이 불상이 홀로 서 있다. 불상의 앞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마치 실제처럼 옷 주름이 져 있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어떻게 저런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며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전시를 안내해주던 학예연구사가 이렇게 말했다.불상의 뒤편으로도 한 번 가보시겠어요? 진정 놀라운 건 바로…
장애 체육시설 부족의 아쉬움
지난해 9월 코리아 휠체어컬링리그를 취재하러 경북 의성에 갔을 때다. 휠체어컬링리그는 국내 처음 도입된 겨울 장애인스포츠 리그였다.의성컬링센터의 빙질 자체는 괜찮았다. 선수들도 리그 상위권 도약을 위해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컬링장 시설이 아쉬움을 남겼다. 휠체어가 드나들기에는 통로가 비좁았고 화장실 이용도 불편했다. 이는 비단 의성컬링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체육시설은 낙후돼 있고, 여기에 장애인 편의시설까지는 언감생심이다. 지자체에서는 예산 문제를 얘기하지만, 비장애인 체육시설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부족